10년이 지났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나는, 그때의 내가 상상도 못했던 책상 앞에 앉아 있다. 창밖으로 늦가을 햇살이 들어오고, 나는 더 이상 빚에 쫓기는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오늘,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 보려 한다. 누군가는 지금의 나처럼, 캄캄한 방 안에서 숨 쉬는 것조차 버거운 밤을 보내고 있을 테니까.
그 겨울, 나는 원룸의 좁은 벽을 마주하고 앉아 있었다. 창문은 없었다. 아니, 있었는지도 모른다. 다만 그 창으로는 하늘이 보이지 않았다. 옆 건물의 회색 벽만이 하루 종일 나를 지켜보았다. 보일러를 켤 돈이 아까워 이불을 뒤집어쓰고 앉아 있으면, 벽 너머로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렸다. 이 건물 어딘가에도, 나처럼 웅크리고 앉은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 때면 이상하게 마음이 놓였다.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만으로도.
돌이켜보면 나는 꽤 성실한 인생을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공기업에서, 금융회사에서, 때로는 건설 현장에서 25년 가까이 밥벌이를 했다. 대학을 졸업했으니 교육의 의무를 다했고, 육군 병장으로 만기 제대했으니 국방의 의무를 다했다. 월급쟁이로 살며 단 한 번의 탈세도 없이 원천징수로 세금을 바쳤으니 납세의 의무를 다했고, 근로의 의무는 두말할 것도 없었다. 거기에 딸 둘, 아들 하나까지 낳아 길렀으니, 나는 이 나라가 요구하는 국민의 책무, 즉 국민의 4대 의무를 빠짐없이 치러낸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왜 이 좁고 창 없는 방에 혼자 앉아 있게 되었는지, 그때는 스스로에게 몇 번이고 물었다. 답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성실함이 불행을 막아주지는 않는다는 것을, 나는 너무 늦게 알았다.
명예퇴직이라는 말은 참 이상했다. 명예로운 퇴직이라니. 그 안에 숨겨진 것은 “너는 더 이상 필요 없다”는 통보였을 뿐인데, 세상은 그것을 그럴듯한 말로 포장해 건넸다. 25년을 바친 조직은, 내가 떠나는 날 마지막 인사조차 짧았다. 그렇게 나는 어느 날 갑자기, 아침에 갈 곳이 없는 사람이 되었다.
퇴직금을 손에 쥐었을 때, 나는 착각했다. 이제부터는 내가 주인인 인생을 살 수 있다고. 돈이 돈을 번다는, 자본주의의 오래된 속삭임에 귀를 기울였다. 매일 아침 눈을 떠 출근할 곳이 없다는 사실이 처음에는 홀가분했고, 나중에는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그 두려움을 메우기 위해 나는 무언가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그 속삭임이 나를 어디로 끌고 갈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인생이란 강물과 같다. 평온하게 흐르던 물줄기도 때로는 급류를 만나고, 때로는 바닥을 드러낼 만큼 말라붙는다. 나는 그 마른 강바닥 위에 서서, 더 이상 흐를 수 없는 물처럼 멈춰 있었다. 흐르지 못하는 물은 썩는다고 했던가. 그 시절의 나는, 딱 그렇게 안에서부터 썩어가고 있었다.
애들 엄마는 그때 이미 내 눈빛이 달라졌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나중에, 아주 나중에 들은 말이다. “당신 눈에 뭔가 씌어 있었어.” 사람이 무너질 때는 먼저 눈빛부터 흐려지는 모양이다. 아내는 그걸 알아챘지만, 나는 그걸 몰랐다. 아니, 알면서도 모른 척했을 것이다. 가장이라는 자리는,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는 자리였으니까.
딸 둘, 아들 하나. 세 아이의 얼굴이 그 시절 내 유일한 빛이었다는 것을, 나는 한참 뒤에야 깨달았다. 그때는 그저 어둠 속에서 손을 더듬거리며 뭔가 붙잡을 것을 찾고 있었을 뿐이다. 아이들은 아빠의 등이 왜 그렇게 작아졌는지 몰랐을 것이다. 나 역시 설명할 말을 찾지 못했다.
세상에는 나 같은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그때는 몰랐다. 내가 이 구렁텅이에 빠진 유일한 사람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이혼과 빚과 실직이라는 세 개의 돌을 동시에 짊어진 사람은 나 하나가 아니었다. 다만 저마다 자기 방 안에서, 자기만의 어둠 속에서 혼자 버티고 있었을 뿐이다. 그 사실을 조금만 더 일찍 알았더라면, 나는 덜 외로웠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이 블로그를 열었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었다. 살기 위해서였다. 글을 쓰는 동안만큼은, 숨을 쉴 수 있었다. 어쩌면 이 글이 가닿을 누군가도, 지금의 나처럼 캄캄한 방 안에서 숨을 고르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손끝에 힘을 실어주었다.
혹시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나처럼 하늘이 보이지 않는 방 안에 있는가. 그렇다면 잠시, 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기 바란다. 이것은 끝내 이 세상을 등지지 않고 버텨내어 기어코 재출발 허가서를 받아내고 만, 아주 길고 느린 걸음의 기록이다.
(다음 화, “강물도 한때는 마른다”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