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산을 다 날리고 이혼하고 난 뒤, 나는 평생 미신이라고 치부했던 사주팔자 공부에 빠져들었다. 거의 1년 넘게 도서관에 있는 사주 관련 책들을 섭렵했다. 인터넷 강의도 초급부터 고급까지 훑었다. 어느 순간 나는 꽤 그럴듯한 수준으로 내 운명코드를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음력 2월, ‘묘월’에 태어난 ‘임수’다. 물 중에서도 큰물, 저수지와 강과 바다에 해당하는 양수라고 했다. 받아들이고 품어주는 것이 본성이라는데, 돌이켜보면 나는 그 본성대로 살지 못했다. 사람도 재산도 제대로 품고 모으지 못했다. 인생이 꼬인 사람에게는 다 이유가 있다더니,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다.
내 10년 주기 운세는 역행한다고 했다. 48세부터 58세까지는 ‘병화’ 운, 수극화하여 편재 운에 해당했다. 편재는 부동산이나 투자 같은 한방의 재물복인데, 그 운이 흐르던 시기에 내가 가진 걸 다 잃었으니 신기하게 맞아떨어졌다. 58세부터는 운세가 바뀐다고 했다. 더 이상 나빠질 곳이 없다고 믿었던 시점에, 운세의 흐름이 바뀐다는 해석을 하고 보니 묘하게 위안이 됐다. 사주팔자라는 게 미신이라고 하든 말든, 내가 좋은 쪽으로 받아들이면 그걸로 된 거라고 생각했다.
결혼 전 전처는 궁합을 몇 군데서 봤다고 들었다. 좋다 나쁘다가 반반으로 나왔다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애매한 결과를 서로 외면하고 결혼을 결정한 것 같다. 사주공부를 하고 난 뒤, 나와 애들 엄마의 사주를 다시 들여다보며, 우리 두 사람의 사주가 서로 보완해주는 관계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재물복에서도 서로 받쳐주는 구석이 별로 없었다. 결혼 생활 내내 다툼이 잦았던 이유를, 나는 그렇게 운명의 언어로(운명 탓으로) 풀어보며 받아들이기로 했다. 누구 한쪽의 잘못이라기보다, 애초에 서로가 서로에게 맞는 짝이 아니었을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사주를 공부하면서 조상운, 부모운, 형제운도 들여다봤다. 할아버지는 얼굴도 뵌 적이 없었고, 아버지와의 기억도 그리 좋지 않았다. 어머니는 나를 사랑했지만 생활력이 부족해 평생 자식들은 걱정을 안고 살아야 했다. 형제들과도 서로 돕고 의지하기보다는 각자 먹고살기 바빴다. 돌이켜보니 조상운, 부모운, 형제운 어느 하나도 특별히 나를 받쳐주지 못했다는 걸 받아들이게 됐다.
자식운도 들여다봤다. 사주는 아이들에게서 큰 덕을 기대하지 말라고 말하는 듯했다. 하지만 나는 그 풀이에 이렇게 덧붙이기로 했다. 사랑받은 걸 아는 아이들은 결코 부모를 떠나지 않는다고. 어떤 경우에도, 설령 나중에 서운한 일이 생기더라도, 나는 애들 편에 서겠다고.
건강운도 확인했다. 음과 양의 균형이 한쪽으로 치우쳐 있었지만, 큰 병 없이 평균 수명 이상은 살아낼 거라는 풀이였다. 90까지 산다고 치면, 채무의 덫에 걸린 쉰 중반 이후의 10년이 아무리 꼬였다 해도 그 뒤를 기대하며 견뎌볼 만하다는 계산이 섰다. 못 갚은 채무도 10년쯤 지나면 해결되든지 아니면 법적으로라도 정리할 길이 열릴거라고 봤다.
사주팔자는 결국 핑계이기도 하고 위안이기도 했다. 내 잘못이 아니라 운명이 그렇게 프로그램되어 있었다고 생각하니, 차라리 마음이 편해졌다. 좋은 쪽으로 해석하기로 마음먹은 순간부터, 나는 조금씩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다음 화, “장자를 만나다”로 이어집니다 — 5부가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