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전해 초,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장례식장에 서서 나는 누가 오고 누가 오지 않는지를 가만히 지켜봤다. 평소 가깝다고 여겼던 몇몇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반대로 예상치 못했던 고향 사람들이 문상을 와줬다.
살면서 나는 경조사라는 걸 꽤 꼼꼼히 챙기는 사람이었다. 누군가의 부모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으면 퇴근 후 기차를 타고 몇 시간을 달려가 조문하고, 다시 막차를 타고 새벽에 돌아오곤 했다. 그게 사회생활이고 의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어려워진 뒤로, 그렇게 오가며 쌓아뒀다고 믿었던 관계들이 생각보다 얇았다는 걸 알게 됐다.
처음엔 서운했다. 왜 저 사람은 오지 않았을까, 왜 연락이 없을까 하는 생각이 한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들을 탓하기보다, 내가 쌓아온 관계들이 애초에 형편이 좋을 때만 유지되는 것들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누구의 잘못이라기보다, 그런 관계의 속성이 원래 그런 거였다.
나는 그즈음 ‘손절’이라는 말을 배웠다. 주식에서 손해를 보더라도 더 큰 손실을 막기 위해 팔아버리는 그 말을, 사람 관계에도 쓸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억지로 붙잡고 서운해하며 관계를 이어가느니, 마음이 불편해지는 자리라면 조용히 거리를 두는 쪽을 택하기로 했다. 공식적인 모임에는 가되 2차, 3차까지 끌려다니지 않기로 했다. 나를 가르치려 들거나 내 처지를 자꾸 확인하려는 사람과는, 억지로 인연을 이어가지 않기로 했다.
도서관을 오가며 알게 된 또래 한 사람과 한동안 가깝게 지냈다. 처지가 비슷하니 공감할 것도 많았고, 편의점 막걸리 한 병에 새우깡 한 봉지면 부담 없이 어울릴 수 있었다. 그런데 서로 격의가 없어지면서, 그 사람이 내 말끝마다 꼬투리를 잡고 가르치려 드는 게 점점 불편해졌다. 어느 날 나는 조심스레 변명을 덧붙이지 않고, 그냥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왜 자꾸 나한테 스트레스를 주려고 합니까. 나 먼저 일어날게요.” 예전의 나라면 상대의 눈치를 살피며 돌려 말했을 텐데, 이제는 그러지 않기로 했다.
숫타니파타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혼자 가는 게 외로움이 아니라 오히려 자유라는 걸”, 그즈음 조금씩 깨달아가고 있었다.
관계를 끊는다는 건 세상을 등지는 게 아니었다. 나를 소모시키는 관계와 나를 지켜주는 관계를 가려내는 일이었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으로 남으려던 마음을 내려놓으니, 몇몇 진짜 남은 사람들의 얼굴이 더 또렷하게 보였다.
(다음 화, “집안의 경조사를 잊기로 하다”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