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무렵 나는 모질게 마음을 먹어야 했다. 형제자매, 친인척의 경조사를 챙기지 않기로 한 것이다. 부모님 임종과 장례식 외에는 참석하지 않기로 했다. 병원에 입원하셔도 가지 않는 쪽을 택했다. 못 가는 게 아니라, 가지 않기로 한 것이었다.
병원에 갈 때 챙겨야 할 게 세 가지라는 걸 그 무렵 알았다. 돈/카드, 휴대폰, 신분증. 아무리 급해도 돈이 없으면 접수창구 문턱을 넘을 수 없는 게 병원이었다. 보호자 노릇을 하겠다고 빈손으로 가봐야 짐만 될 뿐이었다. 부모님 병원비는 형편이 나은 형제자매에게 맡기는 게 차라리 서로 마음이 덜 상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원해서 부모를 고른 것도, 부모가 원해서 나를 선택한 것도 아니었다. 우연히 맺어진 인연이니, 지금은 그 인연을 잠시 멀리해야 하는 시기라고 되뇌었다. 내가 살아야 나중에라도 다시 가족 곁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그렇게 스스로를 다잡았다.
형제자매와도 거리를 뒀다. 연락을 주고받는 것조차 서로에게 부담이 될 거라 생각했다. 형제자매도 각자 자식들 키우고 돈 들어갈 데가 많았다. 도움을 바라지도, 줄 수도 없는 처지였다. 부모 장례식에서만 서로 얼굴을 보는 사이가 되더라도 어쩔 수 없었다. 친인척과의 관계도 마음에서 접었다. 이혼한 순간 처가 쪽 인연은 자연히 끝났고, 친가 쪽도 당분간 멀리하기로 했다. 다만 아이들에게는 혹시 내 빚이 가족 친척에게 연좌되지 않도록 필요한 대응 절차를 미리 일러두었다.
전처에 대한 마음도 그즈음 조금씩 달라졌다. 이혼하고 몇 해가 지나니, 한창 싸울 때의 날카로운 감정도 많이 누그러졌다. 미워하지도 원망하지도 않기로 다짐했다. 누가 뭐래도 그 사람은 아이들의 엄마였다. 아이들을 돌보고 있는 그 사람이 아프지 않고 지금 다니는 직장에 잘 다니기를, 그저 바랐다.
요즘도 무슨 일이 생기면 가끔 연락이 온다. 얼마 전엔 공인인증서를 갱신해 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인터넷뱅킹을 사용하기 시작한 때부터 그 사람의 컴퓨터며 스마트폰 사용관련 보좌관 역할로 늘 내가 도와주던 몫이었다. 이번엔 원격으로 해결이 안 돼서 결국 큰애가 나서서 처리했지만, 그 사람이 다른 누구보다 먼저 나를 떠올렸다는 사실이 묘하게 마음에 남았다. 내가 자기의 개인정보를 해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아직 남아 있다는 뜻이었을 거다.
배우자의 경조사는 더 이상 챙기지 않지만, 장인 장모의 장례식만큼은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 사람도 작년에 내 어머니 장례식에 아이들을 데리고 왔으니까. 서로가 서로의 삶에서 한 발씩 비켜섰지만, 완전히 끊어지지는 않은 끈이 하나쯤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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