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미리 일러둔 말
“내가 죽으면 즉시 상속인 재산조회부터 신청해라. 재산은 없고 빚만 있을 테니, 너희 셋 중 누구도 그 빚을 떠안을 필요는 없다.”
몇 차례인가 아이들에게 이 말을 했다. 큰딸은 그때마다 “아빠, 그런 말씀 마세요” 하고 말을 끊었다. 그래도 나는 다시 한번 말했다. 비장함이 목소리에 묻어났을 것이다. 아버지라는 사람이 자식에게 물려줄 것이 재산이 아니라 빚이라니, 그 사실이 나를 가장 아프게 했다. 그러나 적어도 그 빚이 아이들에게 그대로 전해지는 것만은 막아야 했다.
상속은 왜 자식에서 시작해 사촌까지 번지는가
우리 법에서 빚은 죽은 사람에서 끝나지 않는다. 1순위로 자녀에게, 자녀가 모두 상속을 포기하면 2순위로 부모와 형제에게, 그마저 포기하면 3순위로 조카와 이모, 고모에게, 그래도 포기하면 4순위로 평생 연락 한 번 없던 사촌에게까지 번진다. 조카가, 사촌이 무슨 잘못이 있어서 얼굴도 본 적 없는 친척의 빚을 떠안아야 하는가. 그 사실을 알고 나서, 나는 반드시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이 빚을 해결하거나, 적어도 아이들이 상속을 포기하거나 한정승인을 받도록 길을 마련해 두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상속포기와 한정승인, 그 차이
내가 당시 공부하며 정리해둔 내용은 이랬다. 상속포기는 말 그대로 재산도 빚도 모두 받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한정승인은 물려받은 재산의 한도 내에서만 빚을 갚겠다는, 조건부 상속이다. 아버지 사망일로부터 세 달 안에, 아버지 주민등록지 관할 가정법원에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나는 세 아이 중 한 명이 한정승인을, 나머지는 상속포기를 받도록 정리해두었다. 이렇게 하면 빚은 그 선에서 끊긴다.
중요한 것은, 법원의 결정이 나기 전까지는 상속재산에 절대 손을 대면 안 된다는 점이다. 통장의 돈 한 푼도 인출해서는 안 된다. 상속재산을 임의로 썼다가는 한정승인 자체가 무효가 될 수 있다.
어머니의 재산조회, 그리고 깨달은 것
몇 해 전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처음으로 상속인 재산조회라는 것을 신청해 보았다. 주민센터, 혹은 정부24를 통한 온라인 신청으로도 가능했다. 신청 후 며칠에 걸쳐 부동산, 자동차, 각종 금융기관의 거래 내역이 차례로 통보되어 왔다. 어머니에게는 재산도, 빚도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깨끗한 정리였다. 그 담백함이, 어쩐지 부러웠다.
내가 세상을 떠나면 아이들도 똑같은 절차를 밟아야 할 것이다. 순재산이 없는 것은 그렇다 쳐도, 덕지덕지 쌓인 빚의 내역을 보며 아이들이 어떤 마음일지, 나는 짐작조차 하기 어려웠다. 지금으로서는 그저, 채무가 자식에게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길을 글로나마 남겨두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지금 돌이켜 보며
지금은 안심상속 원스톱 서비스로 이런 절차가 한결 간소화되었다고 들었다. 제도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그 시절 내가 밤새워 알아봐야 했던 것들이, 이제는 몇 번의 클릭으로 정리된다고 하니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래도 그 절차를 모르고 있다가 뒤늦게 당황하는 사람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 나는 이 기록을 남긴다.
(다음 화,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