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명 백 세 시대라고들 한다. 이혼하지 않으면 부부가 백 년을 함께해야 하는 셈이다. 끔찍하지 않은가. 예순까지만 살아도 오래 살았다고 잔치를 벌이던 시절을 살다 간 사람들이 차라리 부러울 때가 있었다.
그 무렵 어느 외국의 정상이 수십 년 결혼 생활을 끝냈다는 기사를 읽었다. 기자의 질문에 그 정상은 담담하게 답했다. “서로 얼굴을 볼 시간이 없었다. 아이들도 다 컸고, 이제는 각자의 삶을 사는 것뿐이다.” 그 나라에는 노년에 접어들면 부부가 자연스럽게 각자의 길을 가는 관습이 있다고 했다.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낯설게 느껴졌는데, 지금 와서 생각하면 오히려 합리적인 방식 같기도 했다.
할리우드의 유명 배우들을 봐도, 이혼하지 않고 끝까지 가는 경우는 드물었다. 재혼과 삼혼을 거듭하는 일도 그쪽 사회에서는 그리 특별한 뉴스가 아니었다. 우리와는 문화가 다르니 그대로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그 사회에서는 이혼했다고 해서 고개를 숙이고 다니는 사람은 없어 보였다.
우리나라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매년 수만 건의 이혼이 일어나고, 그중 황혼 이혼의 비중은 꾸준히 늘고 있다고 한다. 배우, 운동선수, 기업인, 정치인 가릴 것 없이 이혼한 사람은 셀 수 없이 많다. 다만 TV 화면 속에서는 다들 아무 일 없다는 듯 웃고 있을 뿐이다.
방송에 나와 결혼과 이혼에 대해 조언하는 사람들을 보면, 종종 의문이 든다. 저 사람은 정작 이혼이라는 것을 겪어보고 저런 말을 하는 것일까. 어떤 경우에도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참고 이해하며 살아야 한다고 쉽게 말한다.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생각했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 겪은 사람에게 가르치려 드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고.
세상은 변했다. 결혼 후 삼십 년 정도 살던 시절이 아니라, 재수가 없으면 결혼 후 육칠십 년을 함께 살아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이삼십 년은 어떻게든 버텨 보겠는데, 육칠십 년은 다른 얘기다. 참고 참으며 그 긴 시간을 동행해야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견디기 힘든 일이 될 수도 있다.
남자 입장에서 보면, 이혼은 조금 일찍 독립하는 것과 비슷하다. 어차피 예순을 넘기면 배우자가 있으나 없으나 크게 다르지 않은 날들이 온다. 늙어서 배우자가 없으면 불행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런 말을 하는 사람 중에 실제로 늙어서 혼자 살아본 사람은 얼마나 될까. 직접 겪어보지 않은 추측일 뿐이다.
이혼하고 이삼 년이 지나면, 오히려 이혼 전보다 사이가 나아지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아이들 일로 얼굴을 마주할 일이 종종 생기는데, 그럴 때 애들 엄마는 여전히 밥을 챙겨주기도 한다. 어떤 날은 먹고 싶은 것이 있느냐고 미리 묻기도 한다. 남이 되었다고 해서, 완전히 남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오십대, 육십대의 보통 사람들이 유명인들처럼 살 수는 없다. 그렇다고 어릴 때 배운 일부일처의 도리가 전부라고 믿을 필요도 없다. 주변을 둘러보면, 아무 문제 없어 보이는 부부 사이에도 드러나지 않는 갈등이 있다. 나이가 들수록 그 사실이 점점 더 선명하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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