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불량자 명부에 오르다 (26화)

사람마다 신용등급이 매겨진다. 1등급에서 10등급까지, 숫자가 높을수록 신용은 바닥이다. 빚을 못 갚고 장기간 연체하던 나는, 그해 겨울 결국 9등급, 10등급 어딘가에 랭크되었다.

채무불이행자. 예전에는 신용불량자라 불렸다. 채권자가 할 수 있는 거의 마지막 추심 수단이, 채무자를 그 명부에 올리는 일이었다. 민사집행법에 따라 명부의 부본은 내 주소지 지자체와 금융기관, 금융관련단체로 보내진다고 했다. 좋은 곳에 이름을 올려야 할 나이에, 전혀 다른 명부에 이름이 오른 것이다.

채무불이행자가 되는 순간부터 금융거래는 거의 불가능해졌다. 취직도 사실상 물 건너갔다. 사회생활을 하려는 사람에게는 손발이 묶이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었다. 포기하지 않는 한 반드시 돌파해야 하는 벽이, 그렇게 눈앞에 세워졌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순간부터, 한동안은 좌절과 무력감에 제정신이 아니었다. 가능성보다 불가능성에 자꾸 무게가 실렸다. 세상을 등지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실제로 오랜 시간, 나는 삶과 죽음의 경계 어딘가에서 갈등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결국 사는 쪽으로 마음을 굳혔다. 언제부터인지는 나도 정확히 모른다. 다만 어느 날부터 삶에 대한 투지 같은 것이 조금씩 올라오기 시작했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그 무렵 나는 같은 말을 계속 되뇌었다. 채무불이행자가 되어서도 살 수 있다고. 채무불이행자가 되어서도, 살 수 있다고. 있다고…

법도 사람이 먼저 살고 보라는 쪽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빚을 못 갚아도 최저생계비에 해당하는 금액까지는 통장이 압류되지 않는다는 조항이 있었다. 물론 현실은 조문과 또 달랐다. 은행은 전체 계좌의 합계를 알 수 없다는 이유로 일단 무조건 압류하고 보았고, 그 생계비를 되찾으려면 채무자가 직접 법원에 서류를 내고 풀어야 했다. 번거로운 절차였지만, 적어도 완전히 막혀 있지는 않다는 것, 그 바늘구멍만한 가능성이 나에게는 다음 날을 기대할 근거가 되었다.

그 무렵의 나는, 통보받은 명부의 이름과 지금 살아 있는 나 사이에 어떤 간극이 있다고 믿기로 했다. 서류 위의 이름은 신용 9등급짜리 채무불이행자였지만,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아이들의 안부를 묻는 나는 여전히 살아 있는 사람이었다. 그 둘을 하나로 완전히 겹쳐 놓지 않기로 한 것이, 그해 겨울을 넘긴 방법이었다.

창밖으로 눈이 내리던 밤, 나는 휴대폰에 찍힌 채무불이행자 등재 통보문을 다시 한번 읽었다. 그리고 그 화면을 끄고 불을 끄고 누웠다. 내일도 해는 뜰 것이었다.

(다음 화, “압류된 통장을 되찾는 법”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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