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교육이수증, 또 하나의 자격증 (33화)

폴리텍대학 교육을 수료 한다고 해서 반드시 취업이 되는 건 아니었다. 결국 나이 든 사람이 언제든 들어갈 수 있는 자리는 건설 현장의 일용직 노가다뿐이라는 걸, 그즈음 나는 받아들이게 됐다. 채무불이행자인 나에게는 신용을 따지지 않고, 압류당할 염려 없이 당일 현금으로 일당을 쥘 수 있는 일이 필요했다. 언제든 시작할 수 있고 언제든 그만둘 수 있는 일. 그 조건을 갖춘 건 건설 현장의 막노동 말고는 없었다.

그런데 그 막일에도 자격증이 필요했다. ‘건설업 기초안전보건교육 이수증’이라는 것이었다. 인가받은 안전교육 시설에서 총 네 시간짜리 교육을 받으면 발급해 준다고 했다. 산업안전보건법과 안전의식에 대한 한 시간, 작업별 위험 요인과 안전 작업 방법에 두 시간, 건설 직종별 건강 장해 위험 요인과 건강관리에 한 시간. 그렇게 네 시간 교육을 받고나면 운전면허증 비슷한 크기의 카드 한 장이 나왔다.

교육비는 4만 원 남짓이었다. 제도 초창기에는 무료였다는데, 지금은 교육생이 자비로 부담해야 했다. 4만 원도 아쉬운 형편이었지만, 그 카드 한 장이 없으면 중견 건설사나 외국계 현장에는 발도 들일 수 없다고 했다. 고혈압이 있으면 안 된다는 조건도 있었다. 다행히 그건 넘을 수 있었다.

교육장에 앉아 네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나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까지는 주로 사무실 책상에 앉아 서류 작업을 하거나 결재 서류를 들여다보던 사람이, 안전모 쓰는 법과 추락 위험을 피하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강사는 담담하게 사고 사례들을 짚어줬다. 발을 헛디뎌서, 혹은 자재에 깔려서 다치는 경우들이었다. 큰 회사나 일본계 현장은 안전요원이 실시간으로 지켜보며 작업 속도가 늦어도 안전기준을 지킨다고 했지만, 작은 현장일수록 그런 걸 기대하기 어렵다는 말도 들었다. 안전은 뒷전이고 오늘 하루만 어떻게 넘기면 되는 식으로 일을 다그친다는 말이, 묘하게 마음에 걸렸다.

교육이수증을 받아 지갑에 넣던 날, 나는 마패 하나를 얻은 기분이었다. 이 카드만 있으면 공사가 벌어지는 현장 어디든 찾아가서 일당 10만 원 정도는 벌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밥 굶을 일은 없겠다는 안도감이 들었고, 동시에 쉰 중반을 넘긴 나이에 몸으로 벌어야 하는 처지가 서글프기도 했다. 옛날 같으면 회갑에 다가서는 노인으로 쳐주던 나이였다. 고용노동부도 60세부터는 노령층으로 분류한다고 했다.

그래도 지갑 속 카드 한 장이 당장의 두려움을 조금은 덜어줬다. 월급쟁이로 살 때는 명함이 나를 증명했다. 이제는 이 조그만 안전교육이수증이 나를 증명했다. 증명하는 방식이 달라졌을 뿐, 나는 여전히 살아가고 있었다.

(다음 화,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자리에서”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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