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격증 하나를 손에 넣었다고 바로 현장에 설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일을 하려면 인력사무소를 거쳐야 했다. 집 근처 인력사무소를 몇 군데 알아봤다. 이혼했거나 빚이 있거나 직장이 없는 5,60대 남자들을 받아주는 곳이 생각보다 많았다. 거기선 이혼했는지, 빚이 있는지, 백수인지 아무도 묻지 않았다. 몸만 쓸 수 있으면 됐다.
새벽 5, 6시쯤 가야 했다. 옷차림이 중요하다는 것도 그제서야 알았다. 낡고 거친 작업복, 안전화, 각반을 차고 머리도 좀 헝클어진 채로 가야 베테랑 인부처럼 보였다. 첫날 나는 등산화를 신고 갔다가 사무소 사장한테 한소리를 들었다. 안전화가 아니면 못 보낸다는 거였다. 못이 발을 찌를 수도 있고 다치기 쉽다고 했다. 그날은 그렇게 일을 못 나갔다.
면접 같은 건 없었다. 처음이라고 말하고 주민등록증과 안전교육 이수증을 내면, 사무소에서 복사를 하고 돌려주는 것으로 등록이 끝났다. 등록을 하고 나면 커피 한 잔, 담배 한 대 피우면서 그날 배정이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어느 현장으로 갈지는 그날그날 달랐다. 같은 곳에 며칠 연속 가는 날도 있었다. 배정은 사무소 사장 재량이었고, 성실하게 꾸준히 나오는 사람들이 먼저 불려 나갔다. 어쩌다 한 번씩 나오는 사람은 뒤로 밀렸다.
일의 종류는 다양했다. 폐기물 치우기, 건물·아파트 청소, 계단이나 공장 바닥 청소, 아시바(비계) 작업, 곰방(자재 운반), 방수 작업, 겨울엔 연탄 교체, 옥상 콘크리트 치기 전 철근 바닥 청소와 기름칠, 신호수 깃발 흔들기 같은 것들. 나처럼 특별한 기술이 없는 사람은 그날그날 시키는 대로 하는 잡역부였다. 배우고 가는 게 아니라 현장에서 바로 배우는 거였다.
특별한 기술이 없는 잡역부일수록 어떤 반장, 어떤 팀을 만나느냐가 일 자체보다 중요했다. 팀이 좋으면 힘든 일도 견딜 만했고, 팀이 나쁘면 쉬운 일도 지옥 같았다. 그런 날은 퇴근하고 혼자 소주를 마시게 됐고, 다음 날 안 나가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도 이 일의 진짜 매력은 돈이었다. 일당은 그날 사무소로 돌아오면 현금으로 바로 받았다. 하루에 8만 5천 원에서 11만 원쯘. 통장으로 들어오는 게 아니라 순전히 현금이었다. 압류된 계좌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이력서도, 경력도, 보증인도 필요 없었다. 이혼했는지, 빚을 졌는지, 백수인지 아무도 안 물었다. 몸이 건강하면 일흔이 넘어도 받아줬다. 사후관리도 없었다. 그날 일이 끝나면 끝이었다. 오늘 일, 내일 일을 집까지 가져가서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이 일을 하면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사람이 됐다. 체력이 제일 중요한 자산이 됐다.
인생 뭐 별거 없다고, 슬퍼하거나 처지지 말고 이 자율을 즐기면 된다고, 그즈음 나는 그렇게 생각하려 애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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