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를 만나다 (36화)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나니, 직장 다닐 때 자기계발 교양교육 강의에서 흘려들었던 장자가 새삼 다가왔다. 그때는 그저 한가한 봄 날의 우화쯤으로 여겼는데, 쉰 중반을 넘기고서야 그 속뜻이 보이기 시작했다.

장자에서 가장 먼저 떠오른 건 호접몽이었다. 장자가 나비가 된 꿈을 꾸고, 꿈에서 깨어난 뒤에야 자신이 장자임을 알았다는 이야기. 나비로 날아다니는 동안은 자신이 누구인지도 잊고 그저 자유로웠다는 그 대목이, 그즈음 밤마다 잠들기 전 내가 바라던 것과 꼭 같았다. 낮에는 현실이 버거웠고, 밤이 되면 차라리 꿈속에서나마 다른 존재가 되기를 바랐다. 장자도 지금의 나와 마음이 비슷했는지 벼슬자리에 묶여 자유를 그리워하다가, 날아다니는 나비에게 자신의 바램을 실어 보냈을 거라고 생각하니 그 마음이 낯설지 않았다.

장자의 글 중에 ‘대종사’에 나오는 자상의 이야기도 오래 마음에 남았다. 장맛비가 열흘 넘게 내리던 날, 친구 자여가 굶주려 있을 자상을 찾아갔더니, 자상은 가야금을 두드리며 노래 비슷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아버지인가, 어머니인가, 하늘인가, 사람인가.” 자상은 자신을 이 곤궁에 빠뜨린 존재를 아무리 생각해도 찾을 수 없었다고, 그래서 그저 운명이라 여기기로 했다고 말했다. 부모를 원망한 것도, 하늘을 탓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자신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 앞에서, 체념이 아니라 받아들임을 택한 것이었다.

나는 그 구분이 중요하다는 걸 그즈음 깨달았다. 체념은 모든 걸 놓아버리는 것이지만, 받아들임은 거기서부터 다시 걸음을 떼는 것이었다. 내 힘으로 안 되는 일이라면 운명이라 여기고, 할 수 있는 일에 다시 마음을 쓰는 것. 장자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장자의 아내가 죽었을 때, 친구 혜시가 문상을 왔다가 장자가 곡 대신 상을 두드리며 노래를 흥얼거리는 모습에 놀랐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장자는 삶과 죽음이 본래 하나의 흐름이며, 사계절이 돌듯 자연스러운 변화일 뿐이라고 답했다. 그 이야기를 접하고 나니, 내가 잃은 것들 — 집, 직장, 결혼, 한때 쌓아온 모든 것 — 도 어쩌면 본래 내 것이 아니었던 것이 제자리로 돌아간 것 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래 빈손으로 왔으니, 빈손이 된 지금도 그리 억울할 일은 아니라고.

그 무렵 나는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적도 있었다. 밤이 깊을수록 그런 생각은 또렷해졌다. 그럴 때마다 나는 억지로 책 한 권을 펼쳤다. 소설가 박경리 선생이 말년에 남긴 말이 특히 오래 마음에 남았다.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여행을 생각해 보더라도 생활에 필요한 물건이 없다는 건 불편한 일이지만, 동시에 몸이 가벼워지는 일이기도 했다.

친구를 만나지 않고, 비교를 멈추고, 도서관 한구석에서 마음이 가능 책을 펼치는 것. 그것이 그 시절 내가 찾은 유일한 처방이었다. 오늘이 힘들고 내일도 힘들겠지만, 장자의 말대로 마음이 흐르는 대로 받아들이고 나니 적어도 숨은 쉬어졌다.

(다음 화, “반야심경을 외우는 밤”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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