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물도 한때는 마른다 (2화)

처음엔 주식이었다.

명퇴를 하고 나서 한동안은 그저 멍했다. 아침에 눈을 떠도 갈 곳이 없다는 사실이 낯설었다. 25년을 몸에 새겨온 출근이라는 리듬이 하루아침에 끊기자, 몸이 먼저 허둥댔다. 그 허둥거림을 메우기 위해 나는 노트북을 켰다.

처음엔 재미있었다. 아니, 재미있다고 믿고 싶었다. 매일 아침 장이 열리면 가슴이 뛰었다. 내가 고른 종목이 빨갛게 물들면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고, 파랗게 물들면 그날 밤잠을 설쳤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일이 지긋지긋해졌다. 내가 보유한 종목이 혹시라도 거래정지가 되지는 않을까, 상장폐지라도 당하지는 않을까, 매일 밤 그 불안이 나를 갉아먹었다. 매일 아침 수백 개의 종목 중에서 무엇을 사고 무엇을 팔지 골라야 하는 그 선택의 피로도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나는 파생으로 옮겨 탔다.

선물과 옵션은 주식과 달랐다. 거래정지라는 것이 없었다. 종목을 고를 필요도 없었다. 오직 방향만 맞히면 되는 단순한 게임처럼 보였다. 상승장이면 매수로, 하락장이면 매도로 벌면 된다고 생각했다. 선물의 가격이 오르내리는 그 그래프가 마치 살아 숨 쉬는 생명체처럼 느껴졌다. 그 변동성이 환상적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나는 그때 지옥문을 스스로 열고 그 안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작은 수익도 있었다. 소 뒷걸음질에 쥐 잡힌다더니, 몇 번의 우연한 성공이 나를 홀렸다. 돈만 좀 더 있으면 금방 부자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착각이 나를 다음 단계로 이끌었다. 조금씩, 조금씩 베팅의 크기를 키웠다. 신용대출을 받았고, 묻어두었던 퇴직금 일부를 더 밀어 넣었다. 그때마다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이번만 본전을 찾으면 그만두겠다고.

하지만 시장은 내 다짐 따위에 관심이 없었다. 해외선물까지 손을 뻗었을 때는, 이미 밤낮이 뒤바뀌어 있었다. 미국 시장이 열리는 시간에 맞춰 잠을 설쳤고, 환율의 작은 흔들림에도 심장이 내려앉았다. 국내 선물도 버거운데 해외선물은 그보다 더 거친 파도였다. 환리스크라는 보이지 않는 손이 수익을 갉아먹었고, 밤새 지켜본 그래프는 새벽이면 나를 배신했다.

애들 엄마는 처음엔 모른 척했다. 아니, 모르는 척해주었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가장이 뭔가 열심히 하고 있구나, 생각했을 것이다. 나 역시 집에서는 아무 일 없는 사람처럼 굴었다. 아이들 앞에서는 여느 아빠와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밤이 깊으면, 나는 혼자 거실에 앉아 모니터의 붉고 푸른 숫자들을 노려보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숫자들은 숫자가 아니었다. 내 인생의 균열이 하나씩 벌어지는 소리였다. 강물은 흘러야 강물이다. 멈춰 선 물이 썩어가듯, 나는 그 모니터 앞에서 조금씩, 조금씩 말라가고 있었다. 그때는 그것이 말라가는 것인 줄도 몰랐다. 오히려 뭔가를 향해 질주하고 있다고 믿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 중에도, 혹시 비슷한 길 위에 서 있는 사람이 있는가. 본전을 찾으면 그만두겠다는 그 다짐이, 사실은 가장 위험한 약속이라는 것을 나는 너무 늦게 알았다. 강물도 한때는 마른다. 그리고 마른 강바닥 위에서는, 아무리 발버둥 쳐도 물고기가 헤엄칠 수 없는 법이다.

(다음 화, “심연으로 내려가는 계단”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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