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연으로 내려가는 계단 (3화)

파생시장은 공평하다고들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공평함이 나를 끝내 무너뜨렸다.

선물매매는 양쪽 모두에서 벌 수 있다고 했다. 상승장에서는 매수로, 하락장에서는 매도로. 그러나 실제로 겪어보니 양쪽 모두에서 깨질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몸으로 배웠다. 옵션은 더했다. 양매수니 양매도니 하는 합성 전략들을 공부하고 이리저리 조합해 보았지만, 결국은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정교한 함정이었다. 델타니 감마니 세타니 하는 그리스 문자들을 밤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내가 금융을 공부하는 것인지, 미로 속을 헤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매도포지션을 취하면 된다고 누군가 말했다. 맞는 말이다. 돈이 많고, 어떤 결과도 감당할 자신이 있다면. 그러나 매도포지션이라는 것은, 아흔아홉 번의 작은 수익을 단 한 번에 모두 토해내고도 모자라, 집까지 팔아야 할지 모르는 비수를 품고 있었다. 나는 그 비수를 모른 채 쥐고 있었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가치가 깎여나가는 포지션에서, 백 번 중 아흔 번을 당해보면 알게 된다. 기분이 어떤 것인지. 그럼 왜 매도포지션을 취하지 않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럴 배짱이 없었다고 답할 수밖에 없다.

옵션의 만기일이라는 것이 있었다. 최장 한 달. 아무리 큰 반등이 온다 해도, 마감 시간에서 단 1초라도 넘어서면 그 이후에 수백 배가 오르든 말든 내 것이 아니었다. 시간은 내 편이 아니었다. 나는 시간에 쫓기며 돈을 태우고 있었다.

한 달에 수천만 원씩 깨지는 날이 반복되자, 나는 이성을 잃기 시작했다. 본전을 찾겠다는 생각으로 다음 베팅에 모든 것을 걸었다. 그 베팅이 잘 될 리 없었다. 깨지고, 또 깨지고. 그 과정이 몇 차례 반복되자, 채 일 년이 되지 않아 월급쟁이로 모은 돈과 집까지 포함해 전 재산을 날려버렸다.

지금 생각하면 나는 그때 깨달았어야 했다. 주식매매는 재산을 흔들고, 선물매매는 가정을 흔들고, 옵션매매는 인생 전체를 흔든다는 것을. 그러나 그 깨달음은 모든 것을 잃고 난 뒤에야 찾아왔다.

애들 엄마의 눈빛이 바뀐 것은 그즈음이었다. 처음에는 걱정이었던 것이, 점점 의심으로, 그다음엔 체념으로 바뀌어 가는 것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아이들은 여전히 아무것도 몰랐다. 아빠가 밤마다 모니터 앞에서 무슨 숫자와 씨름하고 있는지, 그 숫자가 가족의 미래를 얼마나 갉아먹고 있는지.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 중에, 혹시 그 계단을 내려가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한 걸음, 한 걸음 내려갈 때마다 돌아갈 수 있다고 믿겠지만, 어느 순간 계단은 사라지고 그 자리엔 벼랑만 남는다. 나는 그 벼랑 끝에 서 있었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다음 화, “쪽박의 해부학”으로 이어집니다)

댓글 달기

위로 스크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