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의 늪에 빠지는 사람은 저마다 다른 얼굴을 하고 있지만, 그 끝에 다다르는 길목은 신기할 정도로 닮아 있다. 나 역시 그 뻔한 길목 중 하나를 걷고 있었다. 다만 그때는 그것이 뻔한 길이라는 것을 몰랐을 뿐이다.
신용카드 여덟 장을 가진 사람이 카드론으로 한 장당 이삼천만 원씩 받으면, 하루 만에 일이억 원이 손에 들어온다. 신용등급이 높을수록 그 문턱은 오히려 낮았다. 나는 그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신용이 좋다는 것이, 더 깊은 수렁으로 더 빠르게 미끄러져 들어가는 통로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돈이 통장에 찍히는 순간은 이상하게도 안도감을 주었다. 마치 숨통이 트이는 듯한 착각. 하지만 그 돈은 해결책이 아니라 다음 손실을 더 키우는 연료였다. 카드론으로 받은 돈을 다시 매매에 밀어 넣으면서, 나는 점점 숫자 감각을 잃어갔다. 통장에 찍힌 금액이 현실의 돈이 아니라 게임 속 사이버 머니처럼 느껴졌다.
통장 잔고가 바닥을 드러내던 어느 밤, 나는 마지막으로 로또를 샀다. 처음엔 만 원, 그다음엔 삼만 원, 나중엔 오만 원어치씩. 근거 없는 낙관이 나를 사로잡았다. 이 모든 것을 한 방에 되돌릴 수 있는 길이 아직 남아 있다고, 스스로를 속였다. 추첨 방송이 나오는 토요일 저녁마다 나는 숨을 죽였다. 당첨 번호가 하나씩 공개될 때마다 가슴이 내려앉았다. 신이 있다면 나를 외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평소에 신의 존재를 그다지 믿지도 않았으니 그 대가인지도 몰랐다.
통장 잔고가 완전히 0원이 되던 날, 나는 집을 나와 정처 없이 걸었다. 걷고 또 걸어도 현실은 바뀌지 않았고 마음은 가라앉지 않았다. 그날 이후부터였다. 고통이 더 이상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게 된 것은. 온 가족이 겪어보지 못한 낯선 처지로 함께 끌려 들어가고 있었다. 모두 나 때문에.
애들 엄마에게 사실을 털어놓던 날을 지금도 기억한다. 말을 꺼내기까지 며칠을 망설였다. 식탁에 마주 앉아 입을 열었을 때, 그 사람의 표정은 놀라움도 분노도 아니었다. 그저 멍했다. 마치 오랫동안 예감해왔던 일이 마침내 확인된 사람의 얼굴이었다.
아이들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큰딸은 그즈음부터 말수가 줄었고, 작은딸은 괜히 더 밝은 척했다. 막내아들은 아직 어려서 집안 공기가 달라졌다는 것만 희미하게 느끼는 듯했다. 나는 그 변화를 지켜보면서도, 설명할 말을 찾지 못했다. 아니, 설명할 용기가 없었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의 나는 숫자에 중독된 사람이었다. 플러스와 마이너스, 빨간색과 파란색, 그 단순한 이분법 속에서 인생 전체를 걸었다. 그리고 그 게임이 끝났을 때, 내게 남은 것은 텅 빈 통장과, 더 이상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이었다.
(다음 화, “3관왕, 3개의 상처”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