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딸, 말수가 줄어든 아이
이혼하던 해, 큰딸은 중학생이었다. 한창 예민할 나이에, 아빠와 엄마가 갈라서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그 무렵부터 큰딸은 말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나는 그것이 사춘기 탓이라고만 생각하려 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 침묵은 아이 나름의 방식으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었는지도 모른다.
큰딸은 이혼 후에도 가끔 내게 연락을 해왔다. 애들 엄마의 공인인증서를 갱신해야 할 일이 생기면, 엄마를 대신해 내게 연락해 처리를 부탁하기도 했다. 그런 사소한 일들로 이어지는 연락이, 나에게는 끊어지지 않은 끈처럼 느껴졌다.
언젠가 큰딸이 지나가듯 말한 적이 있다. “아빠를 이해해요. 안타깝긴 하지만요.” 일찍 철이 든 아이의 말이었다. 그 말의 진심이 어디까지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한마디가 고마웠다.
작은딸, 괜히 더 밝은 아이
작은딸은 큰딸과는 결이 달랐다. 집안 공기가 무거워질수록, 작은딸은 더 씩씩하게 행동했다. 나는 그것이 걱정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미안했다. 어린 나이에 괜히 밝은 척을 해야 하는 상황을 만든 것이 나였으니까.
이혼하고 몇 해가 흐른 뒤, 작은딸과 짧게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자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 애가 나를 원망하지 않는다는 느낌만은 또렷이 남아 있다. 어쩌면 원망할 기운조차 없을 만큼, 그 시절의 우리 모두가 지쳐 있었는지도 모른다.
막내, 감정에 무디어진 아이
막내아들은 어릴 적부터 유난히 잘 웃는 아이였다. 동네 골목을 뛰어다니며 친구들을 몰고 다녔고, 집에 들어오면 그날 있었던 일을 쉴 새 없이 조잘거렸다. 그 재잘거림이 집안의 활기였다는 것을, 나는 그것이 사라지고 나서야 알았다.
이혼 이후, 막내는 점점 방 안에서만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친구들과 어울려 놀던 시간은 줄어들었고, 휴대폰 메신저로 오가던 대화도 눈에 띄게 뜸해졌다. 애들 엄마가 전해준 바로는, 또래 친구들의 연락에도 “나중에”라는 짧은 답만 보내고 만다고 했다. 웃음소리가 넘치던 아이는 어느새 표정이 잘 읽히지 않는 아이가 되어 있었다.
나는 그것이 사춘기 때문인지, 집안의 변화 때문인지 쉽게 가늠할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꺼내 보이는 법을 서서히 잊어가고 있다는 것. 기쁠 때도, 힘들 때도 무던한 표정으로 넘기는 아이를 보면서, 나는 그 무던함이 사실은 상처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하지 못한 말들
애들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은 많았다. 미안하다는 말, 너희 잘못이 아니라는 말, 아빠가 무능해서 이렇게 된 거라는 말. 그러나 막상 마주 앉으면 그 말들은 목구멍 안에서 맴돌다 사라지곤 했다. 가장이라는 이름이,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은 이혼한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이 어딘가 결핍될 것이라 단정하곤 한다. 그러나 나는 딸들을 지켜보며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떤 환경에서 자라든, 제대로 클 아이는 제대로 큰다는 것을. 모진 환경을 전혀 겪지 않고 자란 아이들이 오히려 훗날 더 크게 흔들릴 수도 있다는 것을.
딸들이 겪은 것은 또래보다 조금 이른 겨울이었을 뿐이다. 그 겨울을 지나, 지금 두 딸은 각자의 계절을 살아가고 있다. 나는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이제는 믿는다.
(다음 화, “아들의 등을 바라보며”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