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음 진동 모드, 그러나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13화)

영화 속 장면이 아니었다

처음엔 두려웠다.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집으로 들이닥치는 장면을 상상했다. 드라마에서 본 그런 장면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러나 실제로 겪어보니, 채권추심은 그런 모습이 아니었다. 추심을 담당하는 사람들도 그저 직장인이었다. 법의 테두리를 넘어서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 영화나 드라마의 과장된 장면은, 극적 효과를 위한 연출일 뿐이었다.

채권추심이 시작되면 가장 먼저 긴 문자메시지가 도착한다. 추심 업무가 시작되었다는 안내와 함께, 불법 채권추심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도 친절하게 알려준다. 정당한 추심 업체라면, 자신들이 하면 안 되는 행동들을 먼저 알려주는 셈이었다.

알아두면 든든한 것들

불법 추심의 유형은 뚜렷하다. 채무자의 허락 없이 집에 들어오는 것, 욕설이나 협박, 가족에게 채무 사실을 알리는 것, 야간 방문이나 세 명 이상의 동시 방문, 이 모두가 불법이다. 심지어 배우자의 빚을 이유로 재산을 처분하겠다고 압박하는 것도 불법이다. 우리나라는 부부별산제이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을 알고 나니, 전화벨이 울려도 예전만큼 가슴이 뛰지 않았다. 처음에는 담당자와 언성을 높이며 다툰 적도 있었다. 커피숍에서 마주 앉아 삿대질을 하며 서로를 몰아세우기도 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뒤로 그 담당자에게서 연락이 끊겼다. 얼마 후 다른 담당자로 바뀌어 있었다. 추심 업체도 사람이 자주 바뀌는 곳이었다.

시간은 누구의 편인가

연체가 길어질수록 연체금액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압박감에는 점점 무뎌졌다. 쉰 중반을 넘기고 사회생활을 접겠다 마음먹으니, 채무를 짊어진 채로도 하루하루를 버텨낼 수 있었다. 통장 거래에 제약이 있는 것은 불편했지만, 가족의 도움으로 그 불편을 조금씩 메꿔나갔다.

시간이 흐르면서, 어느 순간부터 채권자와 채무자의 관계가 조금씩 뒤바뀌는 것을 느꼈다. 연락이 닿지 않는 채무자에게, 추심 담당자가 오히려 “제발 연락 좀 해달라”는 문자를 보내오는 날도 있었다. 빚진 사람이 못내 아쉬워 매달리던 처음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전화벨 소리에도 무뎌지는 날

지금도 가끔 그 시절의 전화벨 소리가 생각난다. 처음엔 심장이 벌렁거렸던 그 소리가, 나중에는 하나의 일상음처럼 들리기 시작했다. 사람은 참 이상하게도, 어떤 고통에도 조금씩은 적응해가는 존재였다.

지금은 법이 더 많은 것을 채무자에게 보장한다고 들었다. 추심 횟수에도 제한이 생겼고, 채무자가 먼저 조정을 요청할 수 있는 권리도 더 분명해졌다고 한다. 그 시절의 나는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몸이 굳었지만,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조금 더 당당하게 그 벨소리를 마주할 수 있기를 바란다.

(다음 화, “딸들에게 못다 한 말”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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