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은 불행이 아니었다 (19화)

10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나는 이혼을 지나치게 무겁게 짊어지고 있었다. 세상의 시선을 의식했고, 내가 뭔가 큰 잘못을 저지른 사람처럼 스스로를 다그쳤다. 그러나 지금은 안다. 오십대 중반을 넘긴 사람에게 이혼은 그렇게 두려워할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그 무렵 나는 뉴스를 챙겨 보는 버릇이 생겼다. 황혼의 부부들이 끝내 서로를 참아내지 못하고 비극으로 결말을 맺었다는 소식을 몇 차례 접했다. 수십 년을 함께 산 부부라고 해서 끝까지 평온하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오히려 오래 묵은 감정일수록 한번 터지면 걷잡을 수 없이 번지는 모양이었다. 그런 소식을 접할 때마다 나는 생각했다. 차라리 그 부부들도, 증오가 그 지경에 이르기 전에 각자의 길을 갔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애들 엄마와 나도 다르지 않았다. 싸울 때의 모진 말들은 어느 한쪽만의 것이 아니었다. 한마디를 하면 두세 마디가 돌아왔고, 그 돌아온 말에 나는 또 날을 세웠다. 이런 날들이 쌓이고 쌓인 끝에, 우리는 서로에게서 더 이상 아무것도 바랄 수 없는 사이가 되어 있었다. 그 상태로 수십 년을 더 함께 간다는 것이, 그때는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이혼은 전화위복이었을 수도 있다. 더 큰 불행을 막아주는 예방주사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사랑이 식고 미움만 남은 관계를 법적으로 붙들고 있는 것이, 두 사람 모두에게 더 깊은 상처를 남겼을 수도 있었을 테니까.

사람이 백 세까지 사는 시대라고 한다. 이혼하지 않으면 부부가 백 년을 함께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는 뜻이다. 생각해보면 역사 어디에도, 부부가 백 년을 함께 살아 행복했다는 기록은 없다. 오히려 어느 한쪽이 먼저 떠나고 남은 쪽이 그 뒤를 그리워했다는 이야기만 남아 있을 뿐이다. 오십대, 육십대까지라면 그래도 참아낼 만하지만, 백 세까지는 버겁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애들 때문에 참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도, 지금은 다르게 본다. 부모의 불화는 이미 아이들 마음속에 새겨졌다. 이혼을 하든 안 하든, 그 불화의 기억은 지워지지 않는다. 시도 때도 없이 싸우는 부모의 모습을 계속 보여주느니, 관계를 정리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관계를 맺는 것이 차라리 나을 수도 있었다.

내가 아무리 성실하게 살았다 해도, 결혼 생활의 유지가 성실함만으로 보장되는 것은 아니었다. 외도 한 번 없이, 하루도 거르지 않고 돈을 벌어다 바쳤지만 그래도 우리는 갈라섰다. 한동안은 그 사실이 억울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다. 결혼이라는 관계는 한쪽의 노력만으로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지금은 재혼을 할 생각은 없다. 다만 누군가 이혼을 고민하고 있다면, 나는 더 이상 말리지 않을 것 같다. 오십대를 넘긴 나이라면, 지금 이대로도 충분히 괜찮은 선택일 수 있다. 세상의 눈을 너무 의식하지 않아도 된다.

그 겨울, 이혼서류에 마지막 도장을 찍고 나와 올려다본 하늘은 유난히 맑았다. 죄를 지은 사람의 하늘이 아니었다. 그저 한 사람의 인생이 방향을 한 번 바꾼 날의 하늘이었을 뿐이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종종 그날의 하늘을 떠올린다.

(다음 화, “혼자가 되어 보니”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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