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손들지 않은 이유 (29화)

그 무렵 주변에서는 개인회생이나 개인파산을 신청하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법으로 정식 보호를 받는 길이 있는데 왜 혼자 버티고 있냐는 거였다.

알아보니 개인회생은 생각보다 조건이 까다로웠다. 일정한 소득이 매달 꼬박꼬박 들어와야 신청이 가능했다. 노가다 일당으로 하루하루를 메우는 나에게는, 그 ‘일정한 소득’이라는 조건부터가 걸림돌이었다. 오늘 벌고 내일 못 벌 수도 있는 처지에, 법원에 매달 얼마씩 갚겠다고 약속할 수는 없었다.

개인파산은 조건이 더 간단했다. 가진 재산이 없으면 됐고, 나는 이미 가진 게 없었다. 그러나 개인파산은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 파산 선고를 받으면 한동안 금융거래는 물론, 일부 직업에는 제한이 걸릴 수 있다고 했다. 이미 채무불이행자 명부에 이름이 올라 금융거래가 막힌 처지에, 거기에 파산이라는 이름까지 더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무엇보다 걸렸던 건 절차였다. 법원에 서류를 내고, 재판을 받고, 면책 결정이 나기까지 기다리는 그 모든 과정이 다시 한 번 나를 심판받는 자리에 세우는 일처럼 느껴졌다. 이미 재산명시명령으로 법원을 한 번 다녀왔고, 추심에 쫓기며 하루하루를 버텨온 처지에, 또 한 번의 법적 절차를 감당할 기운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손을 들지 않는 쪽을 택했다. 개인회생도, 개인파산도 신청하지 않았다. 그냥 버티는 쪽을,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리는 쪽을 택한 것이다. 법이 정해놓은 소멸시효가 있다는 것도 그즈음 알게 되었다. 돈을 갚을 능력도 의지도 보이지 않으면, 채권자도 언젠가는 추심을 포기한다는 것을.

그 선택이 맞았는지는 지금도 확신할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나는, 또 한 번 법정에 서서 내 처지를 증명해야 하는 일만큼은 피할 수 있었다.

(다음 화, “백수가 아니라 은퇴자다”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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