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통장, 그리고 노가다 일당 (28화)

통장 하나가 막히면, 또 다른 통장을 만들어내야 했다. 생활비와 공과금 같은 소액 거래는 결국 가족의 통장을 빌려 쓰는 수밖에 없었다. 부모나 형제자매의 이름으로 된 계좌에, 적은 용돈을 입금시켰다가 필요한 비용을 그 통장계좌로 결제했다. 금융실명제를 생각하면 떳떳한 방법은 아니었다. 그러나 흉악한 범죄에 쓰는 돈이 아니라 그저 생존을 위한 생활비였다. 그 정도의 양심의 짐은, 지고 가기로 했다.

채무불이행자가 되었다고 해서 일할 길이 완전히 막히는 것은 아니었다. 정상적인 취직은 불가능했지만, 일용직 막일은 다른 이야기였다. 체력과 마음가짐이 문제일 뿐, 몸을 쓰는 일자리는 어디에나 있었다. 오십대 중후반이면 체력이 예전만 못했지만, 그래도 하루를 버텨낼 만큼은 되었다.

노가다 막일은 힘든 만큼 보상도 분명했다. 오후 네다섯 시쯤 일이 끝나면, 인력사무소로 돌아가 그날의 일당을 현찰로 받았다. 그 돈을 손에 쥐는 기분은 생각보다 쏠쏠했다. 은행을 거치지 않는 돈이었다. 압류될 통장도, 추심당할 계좌도 없는, 순전히 내 손안의 돈이었다. 그렇게 번 돈이 쌓이면, 이듬해 5월쯘에는 근로장려금까지 받을 수 있다는 것도 그즈음 알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의 나는, 세상이 완전히 막아놓은 줄 알았던 길의 틈을 하나씩 찾아가고 있었다. 통장이 막히면 가족의 통장으로, 취직이 막히면 몸으로 버는 일로. 어느 길 하나가 끊어지면, 반드시 다른 길이 어딘가에 있었다. 채무불이행자가 되어도 살 수 있다는 그 말을, 나는 더 이상 자기최면이 아니라 사실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해 겨울이 끝날 무렵, 나는 인력사무소 대기실의 의자에 앉아 다음 날 일정을 확인하고 있었다. 창밖으로 해가 지고 있었다. 하루의 일을 마치고 인력사무소 수수료 10%를 공제하고 받아 든 지폐 9만 원이(요즘은 실수령 10만원이 넘을 것이다), 그 어떤 통장의 숫자보다 더 또렷하게 손에 잡혔다.

(다음 화, “그래도 손들지 않은 이유”로 이어집니다 — 4부가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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