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류된 통장을 되찾는 법 (27화)

채무불이행자 명부에 이름이 오른 뒤, 통장은 하나둘 압류되어 막히기 시작했다. 월급은커녕, 통장에 들어 있던 몇 십만 원조차 꺼낼 수 없게 되었다. 돈이 없어서 괴로운 것과, 돈이 있는데도 쓸 수 없어서 괴로운 것은 전혀 다른 종류의 괴로움이었다.

통장압류되어도 숨 쉴 구멍은 있다

법에는 최저생계비에 해당하는 금액, 150만 원까지는 통장이 압류되지 않는다는 조항이 있었다(현재는 185만원으로 변경되었다). 다만 현실은 조문과 달랐다. 은행은 내가 가진 모든 계좌의 합계가 얼마인지 확인할 길이 없다는 이유로, 일단 무조건 압류하고 보았다. 185만 원 미만이라는 증명 책임은 고스란히 채무자에게 떠넘겨졌다. 결국 압류를 풀려면, 채무자가 직접 법원에 ‘압류금지채권범위변경신청’을 내야 했다.

신청서는 혼자서도 쓸 수 있다

처음엔 법무사에게 맡겨야 하나 생각했다. 비용을 알아보니 20만 원에서 30만 원이 들었다. 단돈 1 만원이 아쉬운 처지에, 그 돈마저 아까웠다. 아니 그 큰 돈을 쓸 여유가 없었다. 대법원 전자민원센터 홈페이지의 민원안내·양식모음 메뉴에 들어가면 신청서 양식을 내려받을 수 있었다. 신청인란에는 내 이름과 주소를, 피신청인란에는 통장을 압류한 채권자의 이름을 적었다. 제3채무자란에는 압류된 통장이 있는 은행을 적으면 되었다. 신청원인은 간단했다. 민사집행법에 따라 생계비로 쓸 수 있도록 통장 압류를 해제해달라는 내용이었다. 고등학교 수준의 읽기 쓰기만 할 수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직접 부딪쳐 되찾은 90만 원

통장압류 해제 신청, 즉 압류금지채권범위변경신청을 접수하고 나니, 법원에서 보정명령이 내려왔다. 거래내역이 없는 은행에 대한 확인서를 추가로 내라는 것과, 주소가 잘못 기재되었다는 것, 두 가지였다. 시키는 대로 고치고 보충하자, 일주일쯤 뒤에 압류를 해제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판결문을 들고 은행 창구로 갔다. 인터넷뱅킹으로는 출금이 안 되고, 본인 명의의 다른 은행 통장으로만 이체가 가능하다고 했다. 다행히 빈 통장이 하나 있어 그쪽으로 이체를 받았고, 그 지점 ATM으로 달려가 전액을 뽑았다. 천만 원도 아닌, 90만 원 정도였다. 그래도 그 순간만큼은 천만 원보다 소중하게 느껴졌다. 적어도 몇 달치 생계비는 확보한 셈이었다.

다만 이 모든 절차를 통해 출금에 이용한 통장은 한 번 쓰면 끝나는 것이었다. 압류를 푼 통장은 그 한 번의 출금으로 수명을 다했다. 게다가 판결 결과가 채권자에게도 통보되는 탓에, 내게 또 다른 통장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말았다. 시간이 문제이지 결국은 그 통장도 곧 뒤따라 압류되었다. 채무자에게는 좀처럼 도망갈 구석이 남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그 서류 한 장을 접수하던 날의 기분을 잊지 못한다. 법무사 없이, 변호사 없이, 내 손으로 내 생계비를 되찾아왔다는 그 사실 하나가, 넘어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증거처럼 느껴졌다.

(다음 화, “숨겨진 통장, 그리고 노가다 일당”으로 이어집니다)

댓글 달기

위로 스크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