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텍대학 교실에 다시 앉다 (32화)

실업급여가 끝나갈 무렵, 나는 인터넷 검색창에 “중장년 실업자 지원”이라는 말을 넣어 봤다. 생각보다 많은 것이 검색 결과로 나왔다. 중장년 취업알선, 국비무료교육, 교육수당, 중식 무료, 교통비 지급. 표현은 제각각이었지만 결국 하나였다. 이혼하고 빚을 지고 직장을 잃은 중년에게도 국가가 기회를 주며 내미는 손길 이었다.

큰 돈을 기대할 건 아니었다. 평균 월 180만 원, 많아야 200만 원 남짓의 일자리로 이어지는 교육과정 이었다. 그래도 빈손의 중년 실업자에게는 가뭄의 단비 같았다. 한 달에 100만 원만 고정적으로 들어와도 대단한 일이라는 걸, 나는 그 교육을 알아보면서 처음으로 체감했다.

한국폴리텍대학이라는 곳이 있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다. 고용노동부 산하의 종합기술 전문대학으로, 전국에 캠퍼스를 두고 재직자와 실업자 모두를 위한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었다. 나는 몇 해 전 그곳에서 중장년을 대상으로 한 자동화 장비 제어·유지보수 과정을 3개월 동안 들은 적이 있었다. 교재비는 무료였고, 중식도 공짜였다. 교통비는 한 달에 5만 원씩 지원됐고, 개근하면 수당 20만 원이 통장에 꽂혔다. 결석한 날만큼은 일할 계산으로 깎였으니, 돈 때문에라도 꾸준히 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때는 솔직히 재취업이 목적이 아니었다. 교육받는 동안 지인의 회사 일을 돕고 있었고, 그 인연으로 용돈 정도는 받고 있었다. 교육에 참가한 진짜 이유는 한 달 20만 원 수당, 무료 중식, 그리고 같은 처지의 동년배들과 나누는 정보였다. 수업이 끝나면 지도교수가 몇 달간 취업 여부를 계속 챙겼다. 제도상 교육이 끝난 뒤에도 6개월 정도는 관리하도록 되어 있다고 했다. 진심으로 교육생들의 다음 걸음을 걱정해주는 시스템이었다.

이제 다시 폴리텍대학의 문을 두드려 볼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도 재취업에 목표를 두지는 않을 참이었다. 인생 2막을 걸어가는 데 필요한 건 다른 데 있었다. 동년배들과의 정보 교류, 그리고 혹시라도 건질 수 있는 사업 아이디어였다. 폴리텍대학의 중장년 교육 목적에는 개인 창업도 포함되어 있다고 했으니, 그 길도 열려 있었다.

나는 내가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30년 가까이 근로의 의무를 다했고, 원천징수로 납세의 의무를 지켰다. 군 복무로 국방의 의무도 마쳤다. 국민의 의무를 충실히 해온 사람이 국가의 지원을 받는 게 부끄러울 일은 아니었다. 그동안 월급에서 떼어간 세금에 대한 보답을 이제서야 받는 거라고 생각했다.

신청서를 쓰면서 나는 오랜만에 어떤 소속감을 느꼈다. 회사원도 아니고 사장도 아니었지만, 적어도 교육생이라는 이름은 있었다. 그 교실에 다시 앉는다는 것이, 내게는 작은 출발선이었다.

(다음 화, “안전교육이수증, 또 하나의 자격증”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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