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단추를 잘못 끼운 자리에서 (34화)

안전교육 이수증을 지갑에 넣고 다니던 그즈음, 나는 문득 내 인생의 첫 단추가 어디서부터 잘못 끼워졌는지를 되짚어 보게 됐다. 사람들은 말한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고. 첫 직장, 첫 근무지, 첫 배우자 — 이 ‘첫’이라는 글자가 붙은 선택들이 10년, 20년, 30년 뒤의 인생을 결정짓는다고.

나는 공채시험으로 첫 직장에 들어갔다. 백 명이 넘는 입사 동기들이 같은 출발선에 섰고, 신입 연수가 끝나자 첫 근무지를 발령 받았고, 다들 전국 각지로 흩어졌다. 나는 서울권 강북 쪽이었다. 그때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 그 당시엔 강남이든 강북이든, 아파트 분양가에 큰 차이가 없었다. 다들 자기 직장에서 가까운 동네에 신혼집을 구하고, 첫 집을 분양받았다. 나도 그렇게 강북 쪽에 자리를 잡았다. 20년, 30년이 지나고서야 그 로케이션 하나가 입사 동기들 사이의 재산 격차를 하늘과 땅만큼 벌려 놓았다는 걸 알게 됐다. 실력도 아니고, 성실함의 차이도 아니었다. 그냥 어디에 첫 집을 마련했느냐의 문제였다.

결혼도 그 무렵의 일이었다. 그 시절 사회 분위기가 그랬다. 첫 직장을 잡으면 몇 년 안에 결혼을 서두르는 게 당연했다. 나도 그 흐름을 따라 20대 후반에 그 사람을 만나 가정을 꾸렸다. 둘 다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다. 사랑만 있으면 나머지는 둘이서 만들어갈 수 있다고 믿었다. 10년쯤 함께 살아보고서야, 재물을 모으고 살림을 불려나가는 일에서 우리 둘의 궁합이 그리 좋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그 시절 나는 더 큰 돈, 더 빠른 성공을 바랐다. 주어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무리하게 돈 벌 길을 찾았고, 결과는 좋지 않았다. 혼자 잘 살아보겠다고 벌인 일은 아니었지만, 실패한 사람의 해명은 늘 자기변명으로 들릴 뿐이었다. 그 사람도 전업주부로 지내던 그 시절이 사실은 꽤 괜찮은 시절이었다는 걸, 나중에야 서로 다른 자리에서 깨달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고 어떤 성인의 말로도 전할 수 없는 자기만의 깨달음이란 게 있다. 자기가 직접 겪어봐야 알게 되는 것들.

이혼하고 나서야 많은 생각이 들었다. 다툼이 쌓여가던 때, 더 일찍 각자의 길을 갔어야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본전 생각, 지나간 시간, 매몰된 비용에 대한 아까움이 오히려 서로를 더 오래 붙잡아 뒀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 책임을 한쪽에만 지울 수 없다는 것도 이제는 안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이니까.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는 걸 느꼈을 때 다시 풀고 고쳐 끼울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인생은 되돌릴 수 없는 길이다. 다만 방향만 맞는다면, 늦게 가도 상관없다는 것 또한 깨달았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자리에서 출발했더라도, 끝까지 나아가기만 하면 결국 같은 출구에 닿는다는 것도.

(다음 화, “사주팔자라는 이름의 위로”로 이어집니다)

댓글 달기

위로 스크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