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를 끊기로 했다 (40화)

그즈음 나는 휴대폰을 정지시켰다. 번호를 없애면 세상과의 연결도 끊어졌다. 누구도 나를 찾을 수 없었고, 추적할 수도 없었다. 이상하게도 그 단절이 마음에 평온을 가져다주었다.

왜 사람이 노숙자가 되는지, 그때 조금 알게 됐다. 익명이 되고 싶어서였다. 연결되면 괴로웠고, 끊어지면 숨을 쉴 수 있었다. 추심 전화에 쫓기던 그 무렵의 나는 연락이 닿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 차라리 사는 길이라고 느꼈다. 지금은 개인채무자보호법이라는 법이 생겨서 추심 연락의 횟수나 방식도 법으로 제한된다고 들었다. 그때는 그런 보호가 부족했고, 있더라도 유명무실 일 수 있었다.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심장이 내려앉았다. 번호를 없애는 것 만이 그 놀람과 불안에서 벗어날 유일한 방법이었다.

휴대폰 없이 일주일쯤 지내니 금단증상 비슷한 게 있었지만, 생각보다 견딜 만했다. 급할 때는 피시방이나 도서관, 관공서 컴퓨터를 썼다. 공중전화로 수신자부담 전화를 거는 법도 다시 익혔다. 공중전화 수화기를 들고 긴급통화 버튼을 누르고, 통신사 콜렉트콜 번호를 누르고, 상대방 번호와 우물 정 자를 누르면 됐다. 상대가 받아주지 않으면 그걸로 끝이었다. 가족에게는 미리 말해뒀다. 모르는 번호로 수신자부담 전화가 오면 일단 받아달라고.

연결을 끊고 나니, 역설적으로 남아 있는 인연이 더 선명해졌다. 가족 말고는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어둘 필요가 없었다. 경조사도, 오랜 친구의 연락도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서운해할 사람도 있었겠지만, 그즈음의 나는 모두에게 좋은 사람으로 남으려는 마음부터 내려놔야 했다. 누구에게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태어난 건 아니었으니까.

물론 불편한 것도 많았다. 아르바이트 자리를 알아볼 때 연락처가 없으니 애를 먹었다. 면접 결과를 통보받을 길이 없어 답답했다. 그래도 그 불편함이, 추심 전화에 떨던 불안보다는 견딜 만했다. 번호를 바꾸는 것도 한 방법이었다. 연락해도 좋을 사람들에게만 새 번호를 알려주고, 몇 달 뒤에 다시 바꾸기도 했다. 그렇게 하면 내가 받고 싶은 전화만 받을 수 있었다.

세상과의 연결을 끊는다는 게, 인생을 포기한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저 지금 당장은 세상의 주류에서 한발 물러나야 숨을 쉴 수 있었던 것 뿐이다. 그 무렵 나는 종종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극단적인 생각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하지만 물러날 줄 아는 것도 용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이길 수 없는 싸움이라면 도망치는 것도 전략이었다. 전화를 끊은 자리에서, 나는 조금씩 다시 내 속도를 찾아가고 있었다.

(다음 화, “손절이라는 말을 배우다”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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