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취업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는 걸 받아들이고 나니, 남은 길은 하나였다. 돈 없이 시작할 수 있는 사업을 찾는 것. 도서관과 인터넷을 뒤지며 자료를 모았다. 요즘 유행하는 제휴마케팅이나 블로그 마케팅은 이미 끝물이라는 느낌이 확 왔다. 남들에게까지 공개된 돈벌이 아이템이라면, 그 아이템으로는 더 이상 울궈먹을 게 없다는 뜻이었다.
일본 저자 두 명이 쓴 ‘제로 창업’이라는 책을 읽었다. 자금도 실적도 위험도 제로인 상태에서 시작하는 사업을 안내하는 책이었다. 핵심은 간단했다. “누구에게, 무엇을, 어떻게.” 50대 중후반이면 인생 경험 자체가 자산이었다. 자격증이 없어도, 그 분야를 가장 깊이 겪어본 사람이면 전문가가 될 수 있었다. 책이 제시한 일곱 가지 방식 — 컨설턴트, 세미나, 출판, 회원제, 코칭, 프로듀스, 살롱 — 중에 내 처지에 맞는 걸 골라보기로 했다. 핵심은 충성 고객 열 명만 확보하면 밥벌이가 된다는 것이었다. 노가다 판의 ‘십장’이 열 명의 일꾼을 부려 자기 몫을 챙기듯, 어떤 분야든 열 명의 신뢰를 얻으면 혼자서도 사업이 유지된다고 했다.
나는 내가 넘어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서기로 했다. 전 재산을 날린 게 주식매매, 파생매매였으니, 이번엔 그 경험을 거꾸로 쓰기로 한 것이다. 내가 직접 돈을 더 벌겠다는 게 아니라, 같은 실수로 가정이 무너지는 사람을 한 명이라도 줄이는 쪽에 방점을 뒀다. 돈을 잃은 사람에게는 회비를 받지 않고, 돈을 번 사람만 자발적으로 소액을 보태는 방식으로 운영해보기로 했다. 사업자등록을 다시 냈고, 네이버에 카페 만들었다. 주식매매, 파생매매의 위험성을 공유하고, 초보 사업자들이 세무신고며 인허가 같은 걸 혼자 처리하는 법을 나누는 자리였다. 유튜브 채널도 하나 열어 영상을 몇 편 올려봤다. 무료 편집 프로그램으로 서툴게나마 편집도 익혔다.
사주팔자를 공부하며 쌓은 지식도 썩혀두기 아까웠다. 사람들의 사주를 감정해주는 일도 작게 시작해볼 생각이었다. 유료로는 몇 만 원, 무료로는 결과를 익명으로 공개하는 방식으로. 10년 주기 대운부터 그 해, 그 달, 그 날의 운세까지 봐주는 식으로 차별화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솔직히 말하면, 모든 걸 다 내려놓고 싶었던 어느 밤에 떠올렸던 아이디어들이었다. 그때는 그만큼 절박했다. 글씨체를 만들어보겠다는 생각, 중고 거래로 물건을 조금씩 좋은 것으로 바꿔가며 큰 돈을 만들어보겠다는 허황된 상상까지, 되든 안 되든 일단 씨를 뿌려보자는 마음의 나래를 폈다.
씨를 뿌리지 않으면 거둘 것도 없다. 좋은 씨든 나쁜 씨든, 뿌린 사람만이 수확을 기대할 수 있었다. 아이가 넘어지면 앞다투어 일으켜주려 하겠지만, 어른이 넘어지면 세상이 일으켜 세워주지 않는다는 걸, 나는 그즈음 분명히 알게 됐다. 나는 그냥 남들과 다른 길을 걷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하며, 다시 한 번 씨앗을 손에 쥐었다.
(다음 화, “전화를 끊기로 했다”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