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즈음 나는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돈이 없어 삶이 힘들어지면, 사람의 방식이 아니라 동물의 방식으로 먹고 입고 자는 문제를 풀면 된다고. 동물은 끼니를 정해놓고 먹지 않는다. 배가 고프면 먹고, 사냥이 되면 먹고, 안 되면 굶는다. 먹잇감을 가리지도 않는다. 그 논리를 내 삶에 그대로 가져와 보기로 했다.
밥에 반찬 여러 개를 차려 먹어야 한다는 생각부터 버렸다. 9첩 반상이니 12첩 반상이니 하는 것도 다 위장에 들어가면 어차피 비빔죽이 되는 거였다. 밥에 반찬 하나, 혹은 찬밥을 라면에 말아 먹는 한 그릇이면 충분했다. 그릇도 하나, 수저도 하나면 됐다. 원룸 냉장고는 작아서 된장, 고추장에 재료 한두 가지만 넣어도 가득 찼다. 집에서 요리라는 걸 거의 안 하기로 했다.
하루 세 끼라는 것도, 군대식 1식 3찬이라는 것도 버렸다. 한 끼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아점을 먹고 저녁을 건너뛰는 식으로. 맹수들도 며칠에 한 끼를 먹고 사는데, 먹이사슬 꼭대기에 있는 인간이 하루 세 끼를 꼭 먹어야 할 이유는 없었다. 부처도 오후에는 음식을 드시지 않았다고 하니, 나도 그 흉내를 내보기로 했다.
오후 간식은 천 원선에서 해결하기로 정했다. 마트에서 천 원 이하 컵라면이나, 도서관 매점의 구운 계란 세 개가 천 원이었다. 집에서 가져온 믹스커피 한 봉지를 더하면 이백 원쯤 더 들었다. 자판기 커피보다 20개입 박스 믹스커피가 훨 쌌고, 더 깨끗하게 느껴졌다. 오후에 커피 한 잔을 마시면 그래도 선진국 중산층 국민으로 사는 기분이 들었다.
하루 한두 끼로 사니 몸이 가벼워졌다. 못 먹어서 병나는 시대가 아니라 너무 잘 먹어서 병나는 시대라고,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였다. 라면이 몸에 안 좋다는 건 먹을 게 넘치는 사람들의 사치스러운 걱정이었다. 나는 못 먹어서 탈이었고, 먹을 걸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영양 걱정은 종합영양제 한 통으로 해결했다. 코스트코 커크랜드 제품으로 2만 원이 채 안 됐고, 한 알씩 먹으니 한 병이면 일 년 넘게 갔다. 이거 하나만 챙기면 하루 한 끼 반찬 한가지로도 크게 걱정할 게 없다고 생각했다.
단백질은 돼지 뒷다리살로 해결했다. 백 그램에 350원에서 500원, 만 원이면 3킬로쯤 샀다. 질기고 고무 씹는 느낌이라 이가 안 좋은 나한테는 힘들었는데, 보통 수육보다 세 시간은 더 삶으면 씹기 편해졌다. 큰 솥에 한 번 삶아서 한 입 크기로 잘라 비닐에 나눠 담아 얼려두고, 하나씩 꺼내 된장이나 고추장에 찍어 먹었다. 뒷다리살이 없을 땐 앞다리살로 대신했다. 삶은 물은 기름을 걷어내고 찌개 국물로 다시 썼다. 시들어가는 김치나 묵은 채소를 처리하기에도 딱 좋았다.
라면도 끓이는 법이 바뀌었다. 전에는 물에 스프와 건더기부터 넣고 끓이다 면을 나중에 넣었는데, 이가 안 좋아진 뒤로는 처음부터 다 넣고 5, 6분을 끓여 면을 푹 익혔다. 스프는 3분의 2만 쓰고 나머지는 남겨 찌개 끓일때 썼다. 면은 4등분으로 쪼개 끓였다. 짧아야 국물이 안 튀고 숟가락으로 마지막까지 싹싹 긁어 먹기 좋았다. 배가 많이 고프지 않으면 반 봉지만 끓였다. 남은 반 봉지는 물과 스프도 비율대로 나눠 포장해뒀다. 음식물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게 혼자 사는 원룸족의 절대 규칙이었다.
김치도 설거지 할 것이 없도록 하는 방식으로 담궜다. 배추 한 통이 넉넉히 들어가는 큰 비닐봉지에 절이고, 소금물 빼고 헹구고, 양념까지 봉지 안에서 다 했다. 양념은 고춧가루에 꽁치나 고등어 통조림을 으깨 넣는 게 거의 전부였다. 락앤락 통에 옮기고 나서 봉지에 남은 양념을 물로 살짝 헹궈낸 그 물은 버리지 않고 라면 끓일 물로 썼다.
그렇게 하나씩 사람의 방식을 내려놓고 짐승의 방식을 따라가다 보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가릴 게 없으니 고민할 것도 없었다.
(다음 화, “장보기에도 규칙이 있다”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