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곡이 있는 삶도 괜찮다 (49화)

그 시절 나는 “잘 사는 삶”이라는 게 따로 있다고 믿었다. 남들처럼 해외여행도 다니고, 번듯한 집도 있고, 체면도 지키는 삶. 그런데 어느 순간 그 믿음이 허물어졌다. 누구든 결국 자기 몫의 삶을 살 뿐이고, 아무리 잘 살았어도 죽고 나면 다 잊힌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만 년 전 살았던 사람 중에 기억되는 사람이 있던가. 부와 명예도 결국 숨이 끊어지는 순간 다 끝나는 거였다.

남들이 다녀온 여행지를 부러워할 필요도 없었다. 기억이라는 게 어차피 흐려지니까. 내가 몇 해 전 어디를 다녀왔는지 떠올려 봐도 벌써 희미했다. 치매가 오면 그마저도 다 지워질 터였다. 그러니 중요한 건 지나간 일이나 아직 오지 않은 걱정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숨을 들이고 내쉬는 것 자체였다. 어린 아이들이 유독 행복해 보이는 이유도, 과거나 미래에 매달리지 않고 지금에만 집중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처지가 부모님과 형제자매에게는 짐이 됐지만, 아이들에게는 여전히 내가 비빌 언덕이었다. 그것만으로도 버텨야 할 이유는 충분했다.

“좋은 결말”이 있어야 성공한 삶이라는 생각도 버렸다. 예수도, 부처도, 공자도 평생 고난의 길을 걸었다. 고난의 길을 부러워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보통의 사람에게 있어서는 결말만 좋다고 삶이 의미 있는 건 아니라고 본다.

그 무렵 밤 11시쯤 건물 옥상에 올라가 하늘에 뜬 달을 올려다본 적이 있다. 원룸 안에서 케이블 TV를 틀어놓고 뭔가를 쓰고 있던 그 순간도 그랬다. 특별할 것 없는 장면이었지만, 그 순간을 똑같이 살아본 사람은 나 말고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하찮게만 느껴지던 하루하루가 조금은 다르게 보였다.

다음 생이 없다면, “이번 생은 망했다”는 말도 성립하지 않는다. 숨이 끊어질 때까지 그냥 살아내는 것, 그게 사람이라면 누구나 똑같이 짊어진 몫이었다. 굴곡이 있다고 해서 그 삶이 잘못된 삶은 아니었다. 그냥 남들과는 다른 내 몫의 굴곡진 인생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뿐이었다.

(다음 화, “성공을 가르치는 책은 믿지 않는다”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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