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의 환경에서 살아남으려면 동물적 본능이 깨어나야 한다.
사람은 동물이다. 나는 사람이다. 고로 나는 동물이다. 단순한 삼단논법이었지만, 그 안에서 나는 하나의 길을 발견했다. 내가 동물이라는 것을 자각하는 순간, 삶에 희망이 생겨난다는 것을. ‘나는 동물이다’라고 스스로에게 외치는 순간, 막혀 있던 살길이 조금씩 열리는 것 같았다.
동물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 지금 내가 지고 있는 이혼과 빚과 실직이라는 짐도, 결국 죽을 때는 내려놓게 되는 것들이다. 아무리 무거운 짐도 죽음 앞에서는 결국 내려놓아야 한다. 해결되지도 않을 걱정을 끝까지 끌어안고 있을 필요가 없었다. 일단 내려놓는 것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내가 동물임을 받아들이자, 삶이 조금 수월해지기 시작했다. 동물은 이혼을 신경 쓰지 않는다. 동물은 빚을 신경 쓰지 않는다. 동물은 실직을 신경 쓰지 않는다. 먹이는 찾으면 된다. 죽지 않는 한, 어떻게든 구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동물이라는 자각은 죽음에 대한 태도를 바꾸어 놓았다. 동물은 스스로 죽지 않는다. 타의에 의해 목숨을 잃기 전까지는, 끝까지 삶에 매달린다. 강한 자에게 먹이와 터전을 빼앗기고, 때로 새끼를 잃기도 하지만, 그래도 미래를 걱정하지 않고 지난 일을 후회하지 않는다. 다시 터를 잡고, 다시 삶에 집중한다. 인간도 동물이니, 그것이 불가능할 리 없었다.
동물은 자존심을 생각하지 않는다. 오직 생존을 위한 본능만이 있을 뿐이다.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생각은, 아직 밑바닥까지 내려가 보지 않은 사람의 겉멋일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 겉멋을 버려야 비로소 살길이 열린다는 것을.
동물은 노후를 대비하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데만 집중한다. 나 역시 먼 미래의 걱정을 접어두기로 했다. 지금 당장 숨 쉬고, 지금 당장 한 끼를 해결하고, 지금 당장 하루를 버텨내는 것. 그것이 전부였다.
이 자각이 내 목숨을 살렸다고, 지금도 나는 믿는다. 인간다운 삶과 존엄한 죽음이라는 거창한 것들을 내려놓자, 오히려 괴로움이 조금씩 옅어졌다. 사회적 관계도, 미래에 대한 막연한 희망도, 벼랑 끝에 선 사람에게는 모두 사치였다. 그 욕심들을 하나씩 내려놓으니,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는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그렇게 동물이 되기로 결심했다. 사회가 요구하는 체면도, 남들의 시선도, 그 순간만큼은 모두 접어두었다. 오직 먹고, 입고, 자는 세 가지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그 단순함이, 역설적으로 나를 벼랑 끝에서 붙잡아 주었다.
(다음 화, “애들 엄마에게 쓰지 못한 편지”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