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 엄마에게 쓰지 못한 문자메시지 (10화)

이혼을 하고 몇 해가 지나도록, 나는 그 사람에게 문자메시지 한 통 제대로 써본 적이 없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쓰려고 펜을 들면 손이 멈췄다. 그래서 여기, 이 블로그에 대신 적어본다. 보낼 수 없는 문자메시지를, 이제야.

결혼 생활 내내 나는 바른생활 가장이라 자부했다. 외도 한 번 없이, 하루도 거르지 않고 돈을 벌어다 바쳤다. 그런데도 우리는 결국 갈라섰다. 그 사실이 오래도록 나를 괴롭혔다. 내가 잘못한 게 없는데, 왜 이렇게 되었을까. 한동안은 그렇게 억울해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알게 되었다. 싸울 때의 모진 말들은 어느 한쪽만의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내가 한마디 하면 그 사람은 두세 마디로 받아쳤고, 나는 또 그것을 참지 못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날을 세우던 시간이 쌓이고 쌓여, 결국 이 자리까지 온 것이었다. 손익을 따지자면, 둘 다 셈이 맞지 않는 장사를 한 셈이었다.

재산분할이라는 말은 우리에게는 사치였다. 나눌 것이 남아 있지 않았으니까. 집을 팔아 빚을 갚아도 턱없이 모자랐다. 이혼이 성립되던 날, 나는 그 사람에게 미안하다는 말조차 제대로 건네지 못했다.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대신 마음속으로만, 수없이 되뇌었다.

이혼하고 한동안은 애증이 교차했다. 밉고도 안쓰럽고, 원망스러우면서도 걱정이 되는, 그런 이상한 감정의 뒤섞임이었다. 삼사 년쯤 지나자 그 날카로웠던 감정들이 서서히 무디어졌다. 한창 다투던 시절 품었던 적개심도 이제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그저, 아프지 말고 지금 다니는 일터에서 잘 지내길 바랄 뿐이다. 세상이 뭐라 하든, 그 사람은 여전히 애들 엄마다. 아이들을 돌보고 있는 그 사람을 내가 미워할 자격이 없다는 것을, 나는 뒤늦게 깨달았다.

가끔 그 사람에게서 연락이 온다. 대부분은 무슨 일이 있을 때뿐이다. 언젠가는 인터넷뱅킹 관련 문의를 해왔다. 결혼 생활 동안에도 그 사람의 컴퓨터와 스마트폰 일은 늘 내 몫이었는데, 이혼 후에도 그 역할은 이상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큰딸에게 부탁할 수도 있었을 텐데, 애들 엄마는 내게 연락을 해왔다. 아마 내가 자신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아직 그 사람 안에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사람의 경조사는 더 이상 내가 챙길 자리가 아니다. 그러나 양가 부모의 일만큼은, 지금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 지난해, 그 사람은 아이들을 데리고 내 어머니의 장례식에 와주었다. 상복을 입은 아이들 사이로 그 사람의 얼굴을 보았을 때, 나는 이상하게도 마음이 놓였다.

혹시 그 사람이 아프다면, 나는 주저 없이 곁을 지킬 것이다. 누가 뭐래도, 그 사람에게 가장 편한 손길은 아직은 내 손길일 것이라고 믿는다. 아마 그 사람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쓰지 못한 문자메시지의 마지막 문장은 늘 같았다. 미안하다고, 그리고 부디 아프지 말라고.

(다음 화, “법원 가는 길은 두렵지 않다”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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