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을 하고 나는 원룸에 살기 시작했다. 지난 몇 년 사이, 나는 세 번이나 이사를 했다. 서울에서 지방으로, 같은 지방 안에서도 월세가 가장 싼 곳으로. 그렇게 옮겨갈 때마다 방은 조금씩 더 좁아졌고, 창은 조금씩 더 멀어졌다.
원룸의 주거 여건은 대개 비슷했다. 다만 주변 환경이 달랐다. 역세권인지, 외딴곳인지, 주택가인지, 유흥가 근처인지에 따라 공기가 달랐다. 내가 거쳐온 원룸의 이웃들은 하나같이 처지가 곤궁해 보였다. 구체적인 사정을 캐묻지는 않았지만, 이심전심으로 알 수 있었다. 몇 마디 나누는 대화 속의 떨리는 음색과, 눈동자의 미세한 흔들림만으로도 상대의 처지를 눈치챌 수 있었다. 쉰을 넘긴 나이에 혼자 원룸에 사는 사람이라면, 대개 이혼이거나 빚이거나 실직, 그 셋 중 둘 이상을 품고 있었다.
같은 건물에 살아도 서로 대놓고 교류하지는 않았다. 자신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마음은 누구나 같았다. 나 역시 옆방 사람과 일부러 말을 섞어본 적이 없었다. 가끔 복도에서 얼굴을 마주쳐도 조건반사처럼 눈길을 피했다. 어색함을 모면하려 “안녕하세요” 하고 의례적인 인사를 건네면서도, 상대의 답을 기다리지 않고 지나치곤 했다.
내가 머물던 방의 창문은 하늘을 보여주지 않았다. 창이 아예 없는 방도 있었고, 있어도 바로 앞 건물의 회색 벽만 마주 보는 방도 있었다. 그런 방에서는 지금이 아침인지 저녁인지조차 알기 어려웠다. 햇빛이 들지 않으니, 시간의 흐름도 방 안에서는 흐릿해졌다.
내 이웃들의 출입문은 늘 닫혀 있었다. 그 문 안쪽에서는 마음의 문도 닫혀 있을 것이라고, 나는 짐작했다. 희망을 내려놓은 자리에는 슬픔과 좌절이 일상처럼 자리 잡고, 잦은 음주와 끝없는 불면 속에서 몸과 마음이 함께 무너져 간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그 무렵의 나는 사회와의 끈이 거의 다 끊어진 상태였다. 사회관계망은 이미 끊어졌고, 아니 스스로 끊어버렸고, 새로운 인연은 맺으려 하지도 않았다.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잠들고, 혼자 술잔을 기울이는 생활에 익숙해져 갔다. 이상한 것은, 그렇게 혼자가 되어가는 것이 외롭다고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누군가 옆에 있는 쪽이 더 불편했다.
밤이 깊으면 나는 가끔 옥상으로 올라갔다. 도시의 불빛 사이로 간신히 별이 보이는 밤이었다. 창문 없는 방에서 하루를 보내고 나면, 그 몇 분의 밤하늘이 유일한 숨구멍이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볼 때만큼은, 방 안의 어둠에서 잠시 벗어난 기분이 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시절 나는 하늘을 잃어버린 사람이었다. 머리 위에 분명히 하늘이 있는데도, 그것을 올려다볼 창 하나 갖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었다. 사람이 무너질 때는 먼저 자기만의 작은 하늘부터 잃어버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겨울, 나는 그 창 없는 방 안에서 조금씩 벼랑 끝으로 밀려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벼랑 끝에서 내가 마주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는, 다음 화에서 이야기하려 한다.
(다음 화, “벼랑 끝에서 쓴 유서”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