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것인가, 아니면 이대로 무너질 것인가. 그것이 문제였다.
내 인생은 왜 이런가 하는 자책이 매일 밤 나를 찾아왔다. 처음엔 꿈속에서였다. 나중에는 깨어 있는 시간까지 그 생각이 스며들었다. 그 무렵 나는 모든 것을 내려놓으려는 마음과, 그래도 버텨야 한다는 마음 사이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널뛰었다. 나름의 유언장 같은 것을 써서 품에 지니고 다니기도 했다. 순간 마음이 무너지면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오히려 나를 더 조심스럽게 만들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의 나는 절대 돌이킬 수 없는 결정을 앞두고 서성이고 있었다. 그 서늘함이 얼마나 위험한 것이었는지,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소름이 돋는다.
인생은 어차피 한 번 왔다가 한 번 가는 것이다. 수없이 그렇게 되뇌었다. 그 생각 끝에 모든 것을 놓아버리면 그것으로 끝이라고.
나 자신을 정리하는 시간을 계속 가졌다. 부모도 형제도 뒷전으로 밀려났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이들에 대한 연민만은 끝까지 내 생각의 바구니를 가득 채웠다. 아이들이 앞으로 겪을 고생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선명하게 그려졌다.
일단 오늘은 참고 넘기자. 내일도 그 생각은 다시 할 수 있다. 그렇게 하루하루 결심을 늦추며, 아이들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거듭 생각했다. 생각 끝에 다다른 결론은 이것이었다. 아이들한테는 내가 필요하다는 것. 내가 존재한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아이들에게는 기댈 언덕이 될 수 있다는 것. 그런데 나는 그 언덕을 스스로 무너뜨리려 하고 있었다.
매일 밤을 꼬박 새우며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깜빡 졸다가도 몸에 전류가 흐르는 듯한 느낌에 놀라 깨어나기를, 밤낮 구분 없이 반복했다. 전기고문을 받는 것이 이런 기분일까 싶을 정도였다.
그렇게 여섯 달쯤의 시간이 흐르고, 마침내 하나의 결론에 다다랐다.
가만히 있어도 사람은 결국 죽는다. 일부러 삶을 끝낼 필요가 없다. 그 생각은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뤄야 한다. 지금 당장 무슨 거창한 일을 하려 들지 말자. 지금은 그저, 그 생각을 하루씩 미루는 일만 하면 된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인생에 무슨 정답이 있다고 내가 지금 이 인생을 결론지으려 하는가. 인생은 결과물이 아니라 과정이다. 성공한 인생과 실패한 인생이라는 구분은, 인간이 만들어낸 독선적인 기준일 뿐이다. 그 기준이 절대적일 수 없다. 그냥 살다가 가는 것이다. 수명대로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어쩌면 그 자체로 존중받을 만한 삶일 수 있다.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아이들에게 내 존재 자체가 삶의 의미가 될 수 있다면, 그 하나로 충분하다고 결론 내리자,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이제부터는 살아내는 방법에만 몰두하면 된다고.
그렇게 결심하고 나자, 그동안 내 몸이 겪어온 그 긴 밤들이 어떤 혹독한 수행의 한 과정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혹시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비슷한 밤을 지나고 있다면, 부디 오늘 하루만 더 미뤄보기를 바란다. 그리고 혼자 견디기 버거운 순간이라면, 주저하지 말고 가까운 사람이나 전문 상담 기관에 도움을 요청하시기 바란다.
(다음 화, “아이들 이름을 부르며 잠들고 잠에서 깼다”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