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시절의 자취생활, 대학 때의 하숙, 군대의 단체생활, 결혼 전의 독신 생활. 돌아보면 나는 혼자 사는 일에 그리 낯설지 않은 사람이었다. 먹고, 자고, 몸을 가누는 것. 그 세 가지만 해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일단 살아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이들에 대한 연민과 미안함만큼은, 어떻게 다스려도 가라앉지 않았다. 지금 와서 어쩔 도리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마음은 매일 밤 다시 찾아왔다. 아이들은 스스로 잘 헤쳐갈 것이라고, 나는 믿으려 애썼다. 내가 그래 왔던 것처럼. 빈손으로 세상을 시작해야 했던 그 길을 아이들에게도 물려주는 것 같아 미안할 뿐이었다. 능력 있는 아버지가 되기는 이미 글렀지만, 적어도 빚만큼은 어떻게든 해결해주고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끝내 해결하지 못한다면, 마지막엔 자식들이 아버지의 빚을 물려받지 않도록 하는 길이라도 마련해야 한다고.
딸 둘, 아들 하나. 아이들이 나를 살리는 것인지, 내가 아이들의 삶을 지키려 하는 것인지, 수시로 그 경계가 헷갈렸다.
그 무렵부터 체질에도 맞지 않는 술을 입에 대기 시작했다. 술이 좋아서가 아니었다. 천 원짜리 막걸리 한 병이면 한 끼가 해결되었기 때문이다. 안주는 소금 한 꼬집이면 충분했다. 그런 생활에 생각보다 빨리 적응했다. 스스로 비참하다거나 가엾다는 생각은 하지 않으려 애썼다. 이런 생활 자체가 하나의 수양이라고, 나는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 이후에도 삶을 놓고 싶은 마음은 불쑥불쑥 찾아왔다. 하지만 그때마다 넘기고, 또 넘겼다. 새로운 인생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돌이켜보면 지금까지 되는 일이 별로 없었던 인생이었다. 노력했다고 믿었던 일들도 늘 한 고비 앞에서 무너지는 것이 나의 운명 같았다. 전생에 무슨 업보를 쌓았기에 내 인생행로가 이렇게 흘러왔을까,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그래도 작은 운이라도 남아 있다면, 예상치 못한 순간에 활로가 열릴 수도 있지 않을까. 일말의 기대만은 놓지 않았다.
일단 살아 있어야 좋은 날도 볼 수 있는 법이다. 딴생각 하지 말고 무조건 오늘 하루를 살아내는 데 집중하자고, 나는 매일 다짐했다.
그 다짐 안에는 늘 세 아이의 얼굴이 있었다. 큰딸, 작은딸, 그리고 막내아들. 이름을 하나씩 마음속으로 불러보는 밤이면, 이상하게도 조금은 버틸 힘이 생겼다. 아버지가 사라진 세상에서 세 아이가 살아가야 할 모습을 떠올리면, 아무리 지쳐도 그 하나의 생각이 나를 다시 붙잡아 세웠다.
아이들은 몰랐을 것이다. 아버지가 매일 밤 자신들의 이름을 부르며 버티고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나 역시, 그 이름들이 나를 살리고 있다는 것을 그때는 온전히 깨닫지 못했다. 다만 본능처럼, 그 이름들을 붙잡고 하루를 더 견뎠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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