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물도 흐르는 법을 다시 배운다 (17화)

작년 초, 어머니를 보내드렸다. 상주 자리에 서서 문상객을 맞던 그 며칠 동안, 나는 이상한 생각에 사로잡혔다. ‘아, 이제 나에게는 엄마라고 부를 사람이 없구나.’ 쉰 중반이 넘은 나이에도 그 사실 하나가 그렇게 허망했다. 되돌릴 수 없는 일 하나가 세상에서 영영 사라졌다는 느낌이었다.

하물며 한창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아빠라는 존재가 사라지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 겨울, 나는 몇 번이고 그 질문 앞에 멈춰 섰다. 욱하는 마음에 혼자 결심하고 생을 끝내버리는 일은, 적어도 딸 둘, 아들 하나가 클 때까지는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살아야 할 이유는 스스로 찾아야 했다. 없으면 억지로라도 만들어야 했다.

살아야 할 이유가 마땅히 떠오르지 않는 밤이면, 나는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들을 뒤적였다. 그 속에서 몇몇 얼굴을 만났다.

손빈은 동문수학했던 방연의 계략에 빠져 무릎 슬개골이 잘리는 치욕을 당했다. 그러나 그는 그 자리에서 끝내지 않았다. 살아남아 끝내 병법으로 원수를 되갚았다. 만약 그가 그 치욕의 순간에 생을 놓았더라면, 오늘날 손자병법과 나란히 불리는 그 이름은 세상에 남지 않았을 것이다.

사마천은 궁형이라는, 사내로서는 견디기 힘든 치욕을 당하고도 사기를 완성했다. 그가 쪽팔림을 이기지 못하고 생을 끝냈다면, 우리는 그 방대하고 생생한 역사서를 영영 읽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그 책을 세 번쯤 읽었는데, 읽을 때마다 그가 견뎌낸 시간의 무게가 다르게 느껴졌다.

구마라습은 정복된 왕국의 왕자 신분으로 끌려와, 수행자로서 지켜야 할 계를 강제로 어기는 치욕을 겪었다. 그러나 그는 그 치욕을 견디고 수많은 불교 경전을 번역해냈다. 그가 남긴 글귀 하나는 지금도 이 나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를 펼쳐 보면, 승리의 기록보다 고뇌의 기록이 훨씬 많다. 자기 신세를 한탄하고, 주변의 모함에 낙심하고, 부모와 처자식 앞에 떳떳하지 못한 자신을 책망하며 날밤을 지새운 흔적이 행간마다 묻어난다. 그 고뇌를 안고도, 장군은 끝내 자리를 지켰다.

이름이 남을 만큼 대단한 사람들이라서가 아니다. 그들도 나처럼, 당장 끝내버리고 싶은 밤을 수없이 넘겼을 뿐이다. 그 사실이 묘하게 위로가 되었다.

그 무렵 나는 종종 생각했다. 지금 이 시각에도, 나처럼 좁은 방 안에서 숨 고르고 있는 사람이 이 나라에 몇이나 될까. 통계로 보자면 결코 적은 수가 아닐 것이다. 이혼, 빚, 실직 중 두 가지 이상을 짊어진 오십대, 육십대가 이 도시 어딘가의 원룸촌에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 다만 서로 모를 뿐이다. 각자의 방문은 닫혀 있고, 각자의 벼랑은 보이지 않는다.

위인들의 이야기가 위로가 되었던 것도 이런 이유였다. 대단한 업적을 남겼다는 사실보다, 그들도 한때는 나처럼 벼랑 끝에 서 있었다는 사실이 더 크게 다가왔다. 역사에 이름을 남기지 못한 수많은 보통 사람들도, 어디선가 비슷한 밤을 넘기고 있었을 것이다. 그 사실을 조금만 더 일찍 알았더라면, 나는 덜 외로웠을 것이다.

사주라는 것을 믿는 편은 아니지만, 그 무렵엔 믿고 싶었다. 누군가 내 운세를 봐주며 말했다. 오십대 중반에 굴곡이 있지만, 그 이후로는 운이 바닥을 치고 서서히 풀린다고. 이미 바닥을 지나고 있으니, 남은 것은 올라가는 일뿐이라고 믿기로 했다. 근거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렇게라도 믿어야 다음 하루를 버틸 수 있었다.

빚을 다 해결하겠다는 생각은 잠시 내려놓기로 했다. 할 수 있는 데까지만 하고, 가다가 못 가면 거기서 그만두면 될 일이었다. 지금은 버티는 것이 먼저였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혹시 살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해 헤매고 있는가. 이유는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강물은 마른 자리에서도, 아주 가늘게라도 다시 흐르는 법을 찾아낸다. 나도 그 흐르는 법을 다시 배워야 했다.

(다음 화, “마지막 번호를 누르지 못한 밤” 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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